수행비서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가 “피해자 김지은씨가 그루밍(Groomingㆍ길들이기)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심리위원 의견을 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루밍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어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에 성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이 같은 전문가 의견에 항소심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19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안 전 지사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전문심리위원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능력을 넘어서는 보직을 주고 가벼운 신체 접촉부터 점차 강도 높은 성폭력으로 이행된 점 등을 보면 피해자가 그루밍의 심리상태에 빠졌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고 밝히면서도 “그루밍은 아동, 청소년 등 성적 주체성이 미숙한 대상을 상대로 성적, 심리적 길들이기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성인 여성(김씨)의 경우에 그루밍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무죄 판결 근거 중 하나로 ‘피해자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이나 태도’를 들었는데 김씨가 그루밍 상태에 빠져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전문심리위원 두 명은 결심 공판 직전인 지난달 16일 6차 공판 비공개 심문에서 성폭력 사건 발생 당시와 현재 김씨의 심리 상태, 일반적인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 등에 대해 진술했다.
통상 성폭력 재판에서 법원이 전문가 의견을 받아들여 판단을 내리는 만큼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가 그루밍 상태 가능성을 제기한 전문가 의견에 주목할 경우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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