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 무지” “정치 꿈꾸나” 서로 불신
대통령 ‘역할 교통정리’ 후에도 평행선
“경제 정책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한 경우 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곧 정책 효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믿고 기다려달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두 경제 사령탑이 또 다시 엇갈린 신호를 보내며 국민들 사이에 현 경제팀을 더 이상 신뢰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역대 최악의 일자리 절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 당ㆍ정ㆍ청 회의에서 김 부총리는 고용 악화를 유발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반면 장 실장은 ‘기조 유지’를 못박았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정책실장과 경제 부총리는 경제수석이나 재정기획관 등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며 “그럼에도 당ㆍ정ㆍ청 회의에서 두 사람이 이견을 드러낸 것은 사전 의견 조율이 전혀 안 됐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두 경제 사령탑이 사전에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국민들 앞에 선 셈이다. 일자리, 투자, 생산 등 핵심 경제지표가 바닥으로 추락한 가운데 이들이 서로 다른 경기 진단과 해결책을 내 놓으며 한국 경제의 위기가 더 커지고 있다는 주장도 적잖다. 재계에선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냐”는 말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경제팀 교체 등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이 20일 강조한 대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국민의 신뢰인데 이미 경제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룰 경우 자칫 한국 경제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다.
‘일자리 추경’ 이후 갈등 수면 위로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의 갈등은 지난해 연말부터 관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특히 올 들어 김 부총리가 청와대 정책실과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청년 일자리 추경’(3조9,000억원)을 밀어붙인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장 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김 부총리는 다음날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5월 말 긴급경제점검회의를 소집, 소득주도 성장은 장 실장이 맡고 혁신성장은 김 부총리가 주도권을 잡는 것으로 교통 정리했다.
이후 일단락되는 듯했던 투톱간 갈등은 이달 들어 다시 점화됐다. 지난 6일 김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간 만남을 앞두고 청와대 일각에서 ‘투자 구걸’이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제시되고 김 부총리가 이에 입장문까지 내는 일이 벌어졌다. 이어 9일에는 장 실장의 친정인 참여연대 출신인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갈등 당사자가 (관료들을 겨냥해) ‘대통령 말도 안 듣는다’ ‘자료도 안 내놓는다’ ‘조직적 저항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고 밝히며 갈등설은 더 커졌다. 모두 구체적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김 부총리와 장 실장을 두고 나온 얘기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어 이번 당ㆍ정ㆍ청 회의에서 또 다시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양극화 해소, 소득 불평등 완화 등 큰 틀에선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지 않지만 최저임금 인상 등 각론에선 내용이나 속도 등의 측면에서 간극이 상당히 벌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어느 장단에 춤추나” 한국경제 위기 키워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갈등이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고 있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더 키우고 있다는 데 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위기 극복책을 내 놓아도 모자랄 판에 서로 엇갈린 진단과 처방을 내 놓으며 정책 혼선은 가중되고 시장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양대 경제수장이 ‘정책 이견→조율→부작용 최소화→단일 메시지’의 수순 대신 각자도생하며 따로 움직이면 경제의 위기와 시장의 혼란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한국 경제는 생산ㆍ투자ㆍ소비의 ‘트리플’ 부진이 가시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특단의 처방이 시급한 때다. 6월 전(全)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7% 줄며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설비투자는 5.9% 감소해 3월 이후 4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설비투자가 4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2000년(9~12월) 이후 18년 만이다.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공장을 짓거나 기계ㆍ설비를 사들이는 활동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월드컵 특수에도 소비는 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더구나 7월 취업자는 1년 전보다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월(-1만명) 이후 9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 폭이다. 작년 31만명 수준이던 월 평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올해 2월 10만4,000명까지 떨어진 후 5개월 연속 10만명대 안팎에서 머물다가 급기야 1만명 선까지 내줬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의사(정부)가 병에 걸린 환자(경제)를 치료하려면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올 수 있다”며 “그런데 정책실장과 부총리란 책임자들이 경제 위기의 원인을 중구난방으로 진단하니 정책이 힘을 받기도,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청와대 정책실은 경제 정책의 큰 틀을 만들고, 기재부는 이를 세부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며 “양 기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정책 추진력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갈등 봉합 어려워 “신속한 인사 결단” 여론
두 사람간 갈등의 골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 봉합이 어렵다는 게 관가 안팎의 대체적인 전언이다. 두 사람은 지난달 6일 조찬 회동 당시 격주에 한 번씩 만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이후 회동은 단 한차례 더 열렸을 뿐이다.
정통 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 주변에선 교수 출신인 장 실장에 대해 실물 경제와 실무를 너무 모른다고 공격하고 있다. 반면 김 부총리에 대해서는 국정과제 이행에 충실하기보다 부총리 직함을 발판 삼아 본인의 정치를 꿈꾸고 있다는 평가가 적잖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임기가 짧은 장관은 단기에 성과를 내려 하고 청와대는 멀리 보려는 특성이 있는데 지금도 유사한 모습”이라며 “노 전 대통령도 ‘인위적 경기부양에 매달리지 말고 당장 성과가 없어도 멀리 보고 가자’고 늘 당부했는데도 장관들은 항상 경기 부양책을 들고 왔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제라인 교체 등 대통령의 인사 결단을 주문했다. 최 교수는 “이제는 두 사람간 갈등이 시장과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지경까지 왔다”며 “경제팀을 새로운 사람들로 꾸려 통일되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립대 교수는 “청와대가 ‘소득주도성장’을 철회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예산안 편성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김 부총리에 대한 결단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표학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좋지 않은) 경제 성적표가 이미 나왔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민 경제가 담보된 문제인 만큼 신속한 인적 쇄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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