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말 많고 탈 많던 공정위 ‘38년 독점’ 담합 조사권 내놓는다
알림

말 많고 탈 많던 공정위 ‘38년 독점’ 담합 조사권 내놓는다

입력
2018.08.22 04:40
수정
2018.08.22 09:52
3면
0 0

#1. ‘전속고발권 폐지’ 의미는

갑질 이어 담합 수사도 검찰에 맡겨

공정위 ‘경제검찰’ 권한 대폭 축소

#2. ‘자진 신고땐 감면’도 공동 운영

공정위 벌금, 검찰 형벌 각각 판단

“불확실성 커져 리니언시 줄 것”

“자수한 직원 처벌 면제로 더 늘 것”

#3. 부담 더 커지는 기업들

칼자루 잡은 기관이 늘어난 셈

수사 건수 늘고 강도도 세질 듯

박상기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후 발표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후 발표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21일 가격 등 중대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에 합의함에 따라 그 동안 대기업 ‘면죄부’ 비판을 받아온 전속고발권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공정거래 분야에서 가장 고질적인 법 위반 유형인 ‘갑질’에 이어 담합도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수십 년간 공정위가 독점해온 ‘경제검찰’ 권한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리니언시(담합 자진 신고자 감면제도) 공동 운영으로 불확실성이 커져, 담합 자진 신고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전속고발권은 1980년 공정거래법 제정과 함께 탄생했다. 잦은 형사 고발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 사건은 전문기관인 공정위가 1차 판단한 뒤 검찰에 넘기도록 한 게 당초 취지였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전속고발권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정부는 작년 8월부터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결국 공정위와 법무부는 이번에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에 합의했다. 이미 올초 유통3법(유통ㆍ가맹ㆍ대리점), 하도급법(기술탈취), 표시광고법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결정된 만큼 사실상 전면 폐지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위반 행위가 담합과 갑질인데, 이제 두 가지 모두 검찰이 수사권을 갖게 됐다”며 “공정거래법 집행 주체가 사실상 공정위에서 검찰로 이동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와 검찰의 ‘30년 전쟁’이 검찰의 완승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의미도 있다. 96년 공정위가 식품 가공날짜를 위반한 백화점 등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청을 거부하자 검찰은 공정위를 압수수색해 현직 국장 2명을 뇌물 혐의로 구속했다. 2007년 지하철 7호선 입찰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고발하자 검찰은 또 다시 공정위를 압수수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검찰 내에선 “담합은 무조건 전속고발권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공정위가 공소시효(5년)가 임박한 시점에야 사건을 넘겨 검찰이 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기소하는 일이 많았다. 대선 공약과 달리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에 ‘속도조절’을 시도하자 검찰은 지난 6월 다시 압수수색 카드를 꺼냈다. 최근 재취업 비리 혐의로 공정위 전ㆍ현직 간부 12명을 기소하며 결국 전속고발권 폐지란 성과를 얻어냈다.

전속고발권 폐지로 앞으로 담합 사건은 공정위와 검찰간 경쟁 체제가 구축된다. 당연히 담합 조사ㆍ수사 건수나 강도가 세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선 칼자루를 쥔 곳이 한 곳 더 늘어나는 만큼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검찰에도 담합 수사권을 주는 목적은 담합 억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는 결국 리니언시가 제대로 잘 작동하느냐로 귀결된다. 리니언시는 담합을 자수하는 기업에 과징금이나 고발 등 제재를 면해주는 제도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담합의 70~80%가 리니언시로 적발된다. 그 동안은 ‘자진신고→증거제출→리니언시 확정 (1순위 과징금 100%, 2순위 50% 면제)→담합 조사ㆍ제재→검찰 이송ㆍ기소’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앞으론 리니언시를 검찰과 공정위가 공동 운영하게 된다. 리니언시 신고 접수 후 중대 담합은 검찰이, 그 외는 공정위가 수사한다. 어떤 사건이든 리니언시 기업의 과징금 면제는 공정위가, 형벌은 검찰이 판단한다. 가령 A기업이 공정위에 자진신고를 하고 과징금 면제를 받았는데, 검찰에서 형벌을 면책 받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과징금과 형벌 면제를 모두 판단하는 지금보단 불확실성이 커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리니언시가 줄어들 가능성도 없잖다.

다만 양 기관은 ‘개인 리니언시’를 도입, 자수한 기업의 전ㆍ현직 임직원에 대한 처벌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현행 리니언시 대상은 법인뿐이어서 기업이 리니언시로 과징금ㆍ형벌을 면제 받아도 임직원은 기소될 수 있다. 이의영 군산대 교수는 “기업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대표나 임원 등 개인에 대한 처벌”이라며 “리니언시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의 한 위원은 “리니언시 운영 시 양 기관의 판단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느냐에 따라 제도의 성패가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