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
북측 김순옥(81)씨는 오빠 병오(88)씨의 손을 꼭 잡은 채 말했다. 병오씨는 동생 옆에 앉았지만 차마 동생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허공을 쳐다보며 흐느끼기만 했다.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오빠를 달래던 순옥씨도 결국 입술을 파르르 떨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남매의 얼굴엔 허탈함이 가득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마지막 날인 22일, 작별 상봉과 중식이 진행된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 곳곳에서는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날인 20일 가족을 만날 때 흘러나왔던 ‘반갑습니다’ 노래가 다시 울려 퍼졌지만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이들에겐 구슬프게만 들렸다.
북쪽 손자 리철(61)ㆍ윤(56)씨를 만난 할머니 권석(93)씨는 손자의 손을 한동안 말없이 어루만졌다. “철아 울지마”라고 손자들을 달랬지만, 본인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손수건을 손에 꼭 쥔 채 남측 오빠 김춘식(80)씨가 상봉장에 들어서길 기다렸던 동생 춘실(77)ㆍ춘녀(71)씨는 오빠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춘식씨도 따라 울었다.
마지막 건배를 드는 가족들도 있었다. 북쪽의 아들이 자신을 닮아 술을 좋아하는지 꼭 묻고 싶었다는 이기순(91)씨는 상봉장에 소주를 들고 와 아들과 나눴다. 말문이 막히는지 연신 소주를 들이키면서도 그는 아들 앞에 사과를 밀어주는 등 살뜰히 챙겼다.
당부의 말도 오갔다. 딸들과 동행해 북쪽 딸들을 만난 한신자(99)씨는 “찹쌀 같은 것이 영양이 좋으니 그런 걸 잘 먹어야 한다” 등 전날보다 많은 말을 쏟아냈고, 북쪽 딸들은 어머니 옆에 바짝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렸다.
사진 촬영을 하는 가족도 많았다.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크게 뽑으면 얼마나 좋겠냐”며 남북 이산가족의 기념 사진을 촬영해주던 북측 보장성원(지원인력)은 ‘인화해서 줄 예정이냐’는 남측 취재진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가족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의 명함, 주소,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수십 년 동안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가계도를 그리면서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도 했다.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된 작별 상봉 및 공동 중식을 마지막으로 20일부터 시작된 1회차 상봉 행사가 종료됐다. 24~26일에는 남측 주최로 2회차 행사가 같은 방식으로 열린다. 2회차 행사에서는 북측 이산가족(83명)과 동행 가족 등 337명이 남측의 가족을 같은 방식으로 상봉한다. 금강산=공동취재단ㆍ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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