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종학 교수 기조발제
중국이 턱 밑에서 한국의 주력산업을 추격하고 있지만, 기초과학 분야 기술력은 이미 한국을 훌쩍 앞질러 세계 최강 미국과 경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일보가 2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첨단굴기 중국夢, 위협받는 주력산업’ 토론회에서 기조 발제자로 나선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정경전공) 교수는 중국의 기초과학 연구개발(R&D)의 성과를 평가했다. 이어 중국을 아직도 추격자로 보는 고정관념을 경계하고, 한국 산업계에 발상 전환을 제안했다.
‘중국 혁신의 양상과 한국의 대안 모색’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앞서는 중국의 R&D 증가율에 주목했다. 중국 GDP에서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1.39%에서 2011년 1.84%로 늘었고, 2013년에는 처음으로 2%를 돌파하며 2.09%까지 치솟았다. 지난해에는 이 비중이 2.11%로 역대 최고치에 도달했다. 2012년만 떼놓고 비교하면 중국이 1.98%였을 때 영국(1.72%) 캐나다(1.73%) 스페인(1.30%)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은 중국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는 “R&D가 차지하는 비중이 2% 이상이면 지식기반 사회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10년간 중국에 R&D투자로 대표되는 기술 성장 속도가 더 빨랐던 것은 주요 성(省)들이 주도했다. 베이징은 GDP 중 R&D 투자 비중이 무려 6.08%에 이르고, 상하이(3.60%)와 톈진(2.98%) 등도 전국 평균을 웃돈다. 은 교수는 “R&D를 이끄는 고급인력 규모에서도 우리는 중국의 상대가 안 된다”며 “연간 대졸자가 중국은 해외 30만명을 합쳐 800만명에 이르는데, 우리는 50만명도 안된다”고 말했다.
R&D의 격차는 국제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논문 편수에 그대로 나타난다. 중국은 올해 연간 SCI 논문 편수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앞지를 것이 확실하다. 대부분의 주요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R&D 투자 규모는 압도적이다.
지난해 세계적인 학술지들에 발표된 반도체 관련 논문 1만6,505편 중 중국은 3분의 1에 가까운 5,055편을 쏟아냈다. 미국은 3,179편, 메모리 반도체 1위인 한국은 1,075편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AI) 관련 논문도 지난해 전체 1만4,460편 중 5,050편이 중국산이었다. 우리는 427편으로 13위에 그쳤다. 스페인(765편)이나 이란(670편) 등에도 뒤진다. 2016년까지 누적된 블록체인 논문 역시 중국은 61편으로 미국(36편)보다 많았다.
은 교수는 “논문 수가 많다고 꼭 산업경쟁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며 “특히 중국이 선정한 7대 전략혁신산업 중 정보기술(IT)과 로봇, 조선해양, 수소자동차 등 우리와 겹치는 분야가 80% 이상이라는 점에서 향후 중국은 한국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상대”라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이 발전하며 최근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국가들이 중국 기업을 모방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은 교수는 이를 ‘리버스 이미테이션(역모방)’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대륙의 실수’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게 너무 많아졌다”며 “역모방이 생기고 있다는 점은 중국의 기술 발전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은 교수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정부 대 개인(또는 기업)이란 이분법에서 탈피하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중국이 하지 않는 분야를 찾아서 우리가 할 만한 것은 이제 없어 보인다”며 “같은 분야라도 좀 더 유연하게 새로운 경제사회의 장(場)을 여는 디자이너십(Design+Enterpreneurship)을 발휘한다면 중국에 앞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장이란 사람들을 끌어들여 상호 작용을 하고, 학습과 탐색을 거쳐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은 교수는 “대학이 총 3개밖에 없었던 싱가포르가 2012년 기술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네 번째 국립대학 SUTD(Singapore University of Technology and Design)를 설립한 것도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라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