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우울증 약… 정신 무너져” 성폭행 피해 고통
당시 부목사 “합의된 관계… 병원비 등 돈 요구” 주장
‘교회 부목사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한 신학대 학생이 다니던 교회 건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고인은 유서를 통해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G교회 옥상에 20대 여성 A씨가 숨져 있는 것이 15일 교회 직원과 경찰에게 발견됐다. 신학을 전공하는 A씨는 약 10년 전부터 이 교회를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가방 안에는 작성 날짜를 3일이라고 적은 A4용지 앞뒤 한 장 분량의 유서가 있었다. 인적이 드문 옥상이라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이날 경찰이 출동해 확인할 때까지 시신은 방치가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유서에서 수 년 전 이 교회 부목사로 있던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A씨는 18세인 미성년자였다. 그는 ‘B 부목사는 나를 셀 수 없이 성폭(행)해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성년자일 뿐이었다’ ‘그 후 3년 동안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어 몸과 정신이 무너졌다’ 등 성폭행 피해에 따른 고통을 유서에 담아냈다. 말미에는 B씨 실명과 현재 소속, 휴대폰 번호가 적시됐다.
B씨는 ‘합의된 관계였다’며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현재 다른 교회에서 소속돼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이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다. 당시 A씨는 중ㆍ고등부를 담당했던 B씨를 매우 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본보와 통화에서 “2014년 4월부터 12월까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것은 맞지만, 성폭행이었다면 왜 그 뒤로도 그가 나를 계속 만났겠느냐”고 반박했다. 이어 “이후 병원 입원비나 학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B씨는 본보 취재 후 현재 일하고 있는 교회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그는 “반성하는 뜻으로 더 이상 목회를 하지 않겠다”라며 “다른 교회나 교단에서 다시 목회자로 설 수 없도록 ‘목사 면직 청원’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서대문경찰서는 해당 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부적절한 성범죄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인이 남긴 유서 등을 토대로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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