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포스트시즌 우승 땐 0.3%”
“월드컵 축구 8강 진출 시 0.6%”
은행권 스포츠 연계 예적금
불확실성 커 적용사례 거의 없어
“합리적 상품 선택 방해” 지적도
시중은행의 스포츠 연계 예ㆍ적금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고객들은 실속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결과에 따라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광고에 동해 상품에 가입하지만 결과 예측이 어려운 데다가 우대금리 적용 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이 지난 4월 프로야구 개막시즌에 맞추어 2조원 한도로 출시한 ‘신한 KBO리그 정기예금’은 완전 판매됐다. 이 상품은 고객이 응원하는 한 팀을 고르면 기본금리(연 2.0%)에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0.1%포인트), 한국시리즈 진출(0.1%포인트), 우승(0.1%포인트) 때마다 각각 우대금리를 적용 받을 수 있다. 응원팀이 포스트시즌에서 우승하면 최대 0.3%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는 것이다. 프로야구 팬들을 중심으로 상품이 인기를 끌자 신한은행은 후속상품 ‘신한 MY CAR KBO리그 정기예금’을 5,000억원 한도로 최근 출시했다. 이 상품 역시 기본이자율(연 2.0%)에 시즌 관람객 수가 900만명을 넘는 경우와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경우에 우대이자율을 각각 0.1%를 적용해 최고 연 2.2%의 금리를 제공한다.
국가대표 축구팀을 공식 후원하고 있는 KEB하나은행도 러시아 월드컵 시즌을 앞둔 지난 4월 우리 대표팀이 16강 진출 시 0.3%, 8강 진출 시 0.6%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BNK부산은행도 부산 연고 프로야구팀인 롯데자이언츠가 우승하면 0.1%의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BNK 가을야구 정기예금’을 판매했다.
시중은행이 앞다퉈 내놓는 이러한 이벤트성 상품은 충성도 높은 스포츠팬을 겨냥한 데다 일반 상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인기를 누리고 있다.하지만 정작 우대금리를 적용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대금리 조건이 사실상 달성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다. 실제 KEB하나은행의 ‘오필승코리아 정기적금’ 가입자들은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하는 바람에 우대금리를 받은 가입자가 아무도 없다.
은행들이 ‘팬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을 펴면서 합리적 상품 선택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한은행의 KBO리그 정기예금의 경우 현재 1위인 두산을 선택한 고객은 61.8%(22일 기준)에 불과하다. 특히 두 번째로 많은 고객이 선택한 팀은 현재 8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이나 우승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아(21.5%)였다. 가입자 상당수가 보다 높은 이자 수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선택을 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팬심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은행 마케팅 전략에 지나치게 현혹되기보다는 불확실성이 적고 안정적인 상품을 고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은행권에 대해서도 고객 기대를 부풀리는 이벤트성 상품의 남발이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구형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이 이벤트성 상품을 통해 단기적으로 고객을 끌어 모을 수는 있겠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에 실망한 고객들의 이탈을 부를 수도 있다”며 “소비자 니즈를 분석해 그에 맞는 상품을 개발ㆍ판매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고객 확보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은행권에서 이벤트성 상품을 개선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여자 프로농구단을 보유한 우리은행은 구단의 우승 여부에 따라 우대금리 적용 여부가 갈리는 예금 상품을 내놓다가 2016년부터는 우승과 관계없이 일반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걸로 바꿨다. KB국민은행도 김연아 박인비 윤성빈 등 자사 또는 KB지주가 후원하는 선수의 성적에 따라 금리 조건이 달라지는 스포츠 연계 상품을 근래에는 내놓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벤트성 상품을 판매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고객이 유입될 수 있는 상품 개발에 더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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