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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투표 시스템ㆍ시민권리 확대... 대의 민주주의 한계 극복

입력
2018.08.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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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 비용 크게 줄여 

 주요 정책ㆍ입법 관련 여론 

 보다 자주 물을 수 있어 

 

 새로운 차원의 정치 플랫폼 

 정치자금 모금 방식 등 실험 

 정부에 투명성ㆍ개방성 요구 커져 

 “직접 민주주의 실현 기대” 

 “제도보다 의식 변화가 우선” 

 엇갈린 시선에도 대안 떠올라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블록체인 기술을 정치에 접목하는 ‘블록체인 민주주의’는 이미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성급한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원이자 이상과도 같은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민주주의로의 혁명적 변화를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적어도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물론 변화의 선두에 서서 블록체인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건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의 몫”이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주의 주춧돌 ‘투표’ 바뀌면 정치 근본적 변화” 

블록체인 민주주의의 가장 큰 힘은 투표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주춧돌인 투표 방식을 이전보다 시민의 의사를 더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바꾸면 그 위에 놓인 정치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론 라이트 미국 예시바 대학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세계 모든 나라가 일관되게 활용할 수 있는 ‘열린 투표 시스템’이 가능해진다”며 “투표에서 국가의 입김은 배제되고, 시민의 정치 참여는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정책 민주주의 모델을 구현하고 있는 마이보트의 애덤 재코비 공동창립자는 “시민들에게 주권을 되돌려 주는 블록체인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모델 가운데 최선”이라며 “대의 민주주의 제도가 등장했을 때와 지금은 시대상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시대 변화, 기술 변화에 맞춰 민주주의도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블록체인 민주주의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 구현을 당장 기대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영국 런던대 블록체인기술센터(CBT)의 마르첼라 아트조리 박사는 “투표제를 한층 개선하는 것만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창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의원과 같은 대표자, 의회를 포함한 대의기관 등 정치적 중개기관들이 하는 모든 역할을 블록체인 기술이 대신해 줄 순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제도 변화 뒷받침할 정치의식 성숙이 관건” 

블록체인 기술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정치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특히 새로운 차원의 정치 플랫폼과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주목을 끌고 있다. 암호화폐를 활용한 ‘토큰(Token) 민주주의’ 실험이 한창인 일본이 대표적이다.

유아사 하루미치 정보보안대학원 교수는 토큰으로 정치인과 유권자를 연결하는 21세기형 정치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폴리폴리’의 시도와 관련해 “지역 문제에 대해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토큰을 지역 화폐로 바꿀 수 있게 해 지역 정치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면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새로운 제도의 출현이 공동체 정치의식의 변화와 성숙까지 자동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회의적 시선도 적지 않다. 하드웨어(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운용할 소프트웨어(의식) 없인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쇼코 키요하라 메이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극도로 무관심한 일본에서 블록체인 플랫폼이 다수 유권자를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단순한 참여를 넘어 숙의까지 나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풀뿌리ㆍ상향식 민주주의 강화 위한 해법 

여러 엇갈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큰 건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구원할 든든한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이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민주주의 지수’를 살펴보면 최근 9년 사이 주요 국가의 지수가 대체로 하락했다. 미국의 경우 8.22에서 7.98로 주저 앉았다. 정치문화(-0.62)와 시민자유(-0.29)가 크게 하락한 탓이다. 스페인(-0.37) 핀란드(-0.22) 등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일본(-0.37) 한국(-0.01) 등 아시아 국가도 지수가 하락했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라 할 만하다.

대안으로 등장한 블록체인 민주주의는 투표 비용을 크게 줄여 주요 정책이나 입법과 관련한 시민들의 의사를 보다 자주 물을 수 있다. 기성 정치권이 블록체인 민주주의에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도 이 지점이다. 스페인에선 블록체인 민주주의를 앞세운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대중의 힘을 결집시키며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집권 사회당이 공천 시스템 혁신을 선언하고 나섰다. 러시아 토큰박스의 공동창업자 블라디미르 스케르키스는 “블록체인 민주주의가 등장하면서 모든 정부가 투명성과 개방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큰 압력을 받게 됐다”며 “민주주의는 블록체인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의 권리와 권익을 증대시켜 준다는 측면 또한 더 나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요소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블록체인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경우 의료주권 확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민의 권리가 확대되고 있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난민 인권 보호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블록체인 민주주의는 풀뿌리ㆍ상향식 민주주의 강화, 시민의 권리 확대라는 민주주의의 오랜 숙원을 푸는 해법인 셈이다.

뉴욕=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도쿄ㆍ요코하마=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멜버른ㆍ시드니=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탈린ㆍ헬싱키=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런던ㆍ마드리드=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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