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익부 빈익빈 심화 ‘가계동향조사’ 발표 후 단행
황수경 통계청장이 갑자기 경질되며 통계청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와는 어긋나는 통계 수치가 발표된 뒤 인사가 단행된 점은 사실상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맞춤형’ 통계 생산을 주문한 것이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통계의 정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힘들어진 통계청의 내부 분위기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황 청장에 대한 인사는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다. 역대 통계청장들이 2년 안팎 자리를 지킨 데 비해 황 청장은 취임한 지 1년이 갓 넘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 청장은 노동 통계 전문가로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보조할 적임자로 꼽혔던 이다.
정부와 코드가 맞았던 황 청장이 갑자기 물러나게 된 것은 최근 정부를 곤혹스럽게 한 통계들이 연이어 발표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직접적 발단은 지난 23일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득을 분기별로 공표하는 ‘가계동향조사’ 통계였다. 통계청은 올해 가계동향조사 소득 부문을 되살리며 지난해 5,500가구였던 표본가구를 8,000가구로 늘렸다. 그런데 이후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더 낮아진 것으로 나왔다. 특히 1, 2분기 연속 하위 20%와 상위 20% 가구 소득의 격차도 더 벌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저소득층 소득을 늘려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했는데 수치는 ‘빈익빅 부익부’만 심해진 것으로 나온 셈이다. 정부 관계자도 “통계를 보다 정확하게 생산하기 위해 표본을 확대한 게 오히려 문제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은 당초 올해부터 없애려다 정부와 여당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를 선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유지할 것을 지시해 부활한 통계다. 시키는 대로 통계를 낸 죄 밖에 없는 통계청이 억울한 이유다.
황 청장이 지나치게 통계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중시하다 보니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만한 통계 생산이나 지표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 부족했던 점이 청와대의 불만을 샀다는 해석도 나온다. 통계청의 한 간부는 “통계와 정책은 분리해 접근하는 게 맞고, 황 청장은 내부에서도 이 원칙을 고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후임인 강신욱 신임 통계청장은 소득분배 전문가로, 향후 소득 통계 생산이 강화되는데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는 지난 16일 ‘소득분배의 현황과 정책대응 토론회’에 참석, “가계동향조사는 표본이 완전히 바뀌어 이전 조사 결과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한데도 통계청이 이를 충분히 주지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통계 수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MB 물가'를 만들면서 가격 변동폭이 큰 금반지를 조사 품목에서 제외해 빈축을 샀다. 제15대 통계청장이었던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학 교수는 “통계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되려면 청장의 임기가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통계청의 독립성과 통계 수치의 객관성이 지켜질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성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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