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올 뉴 말리부가 등장했을 무렵 1.5 터보 사양과 2.0 터보 사양을 비교한 기억이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리부를 선택하는 일종의 구매 가이드와 같았던 내용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본다면 '1.5 터보' 사양이 조금 더 합리적이니 그 쪽을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 기사를 다시 본 지인이 물어보았다. '권하는게 아니고 스스로 선택한다면 뭘 살건가?'라는 질문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당연히 2.0 터보'라 말했다.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18년의 여름, 오랜만에 말리부 2.0 터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 터보를 택하는 그 선택이 옳은 것인지 다시 확인해보기로 했다.
명실공히, 그리고 말리부
쉐보레 말리부는 명실공히 쉐보레를 대표하는 주요 차량 중 하나다. 최근 SUV의 인기가 상승세라고는 하지만 중형 세단은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다. 참고로 말리부는 초창기에는 '고급 트림 모델'로 시작되었떤 존재지만 어느새 반 세기에 걸쳐 쉐보레 포트톨리오에 중심을 잡고 있는 모델이며 현행 모델은 '글로벌 아키텍처'라는 이름 아래 개발된 최신 모델이다.
대담함, 그리고 강렬함
쉐보레 올 뉴 말리부의 특징은 바로 대담함과 강렬함에 있다.
사실 지난 시간 동안 쉐보레의 디자인을 살펴보면 강렬한 맛이 다소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행의 말리부는 그런 아쉬움을 모두 씻어내는 존재다. 대형 세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4,925mm의 긴 전장과 1,855mm와 1,470mm의 전고를 갖췄으며 휠베이스 역시 기존 7세대 대비 91mm가 늘어난 2,830mm에 이른다.
당당한 체격에는 선 굵은 디자인이 자리한다. 쉐보레의 아이코닉 쿠페 카마로의 아이덴티티를 품은 새로운 듀얼 포트 그릴과 헤드라이트 디자인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더욱 세련되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선사한다. 참고로 이 디자인은 이후 등장한 쉐보레의 모든 차량에 곧바로 적용되어 '디자인 기조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측면은 미국차의 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도어 패널의 MALIBU 레터링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외의 요소들은 말리부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최신 유행을 신경 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말리부의 측면 디자인은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패스트백 스타일로 다듬어졌고, 독특한 라인 처리로 시각적인 매력을 더욱 강조헀다.
후면 디자인은 쉐보레 고유의 감성이 드러나는 듀얼 램프 타입의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가 적용되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한다면 이 부분이 조금 더 세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2.0 터보 사양은 고출력 모델의 존재감을 과시하듯 듀얼 머플러 팁을 더해 이목을 끈다.
더욱 넓어지고 상냥해진 공간
기존의 말리부는 외형에 비해 실내 구성과 공간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그럴까? 올 뉴 말리부는 공간과 실내 구성에서 많은 신경을 썼다. 듀얼콕핏 2.0을 기반으로 보다 넓고 개방된 공간감을 과시하며 실내 공간에는 다양한 수납 공간을 마련하고 시각적인 디테일을 더해 만족감을 대대적으로 끌어 올렸다.
고급스러운 차량에 적용되었던 랩 어라운드 디자인 아래 다소 투박했던 버튼 및 각종 컨트롤 패널들이 모두 새롭게 다듬어졌다. 덕분에 보다 쾌적한 사용성을 보장하며 심미성까지 모두 향상시켜 운전자 및 탑승자에게 만족감을 제공한다.
마이링크도 이제 안정세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한 8인치 디스플레이는 쉐보레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마이링크와 조합이 된다. 한층 개선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사용해 라디오, 블루투스,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며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 또한 지원된다.
이와 함께 보스의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되어 만족스러운 음향 또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어필 포인트다.
올 뉴 말리부는 단순히 넓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품질을 향상시켰다. 우선 1열 공간을 살펴보면 체형을 가리지 않고 안락함을 물론 풍성한 쿠션으로 장거리 주행과 적극적인 주행 상황에서 운전자를 지지해주는 시트부터 스티어링 휠의 넓은 틸팅, 텔레스코픽 범위, 헤드룸과 레그룸의 확보까지 전체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만족감을 준다.
특히 1열 공간의 좌우폭의 여유가 상당히 뛰어나 ‘중형 세단 이상의 만족’을 느끼기 충분하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차량 개발 트렌드에 있어서 체격을 키우는 건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의미에서 쉐보레 말리부 2.0 터보의 2열 공간은 정말 세그먼트 중 최고의 수준에 이른다. 대형 세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될 정도, 2,830mm의 넉넉한 휠베이스 덕에 2열 공간의 레그룸이 무척 넓다. 실제 체격이 큰 성인 남성 네 명이 타더라도 여유로운 것이 바로 이 말리부다.
올 뉴 말리부 기존 대비 20% 가량의 용량이 줄어 들은 447L에 불과하다. 기존 545L에 이르던 트렁크 공간이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450L에 육박하는 공간은 중형 세단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트렁크 게이트의 형상이나 트렁크의 높이가 낮아서 부피가 큰 짐의 적재가 수월하고 2열 시트를 폴딩할 수 있어 상황에 따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드라이빙의 가치를 높이다
쉐보레의 차량들은 전통적으로 '기본기는 좋지만 출력이 아쉽다(그리고 변속기)'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그럴까? 올 뉴 말리부 2.0 터보의 존재는 상당히 반갑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안 경쟁 차량 대비 늘 소폭 낮은 수치 출력을 구성해왔던 엔진 포트폴리오와 달리 경쟁 모델 대비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엔진을 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체에서도 변화가 있다. 쉐보레는 견고한 차체는 무기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늘어나는 몸무게를 쉽게 제어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 뉴 말리부는 기존의 말리부 대비, 그리고 경쟁 차량과 비교하더라도 확실히 경쟁력이 있는 공차중량을 제시하기 때문에 더욱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으면 곧바로 풍부한 출력이 느껴진다. 이는 최고 출력 253마력과 36.0kg.m의 토크를 내는 2.0L 에코텍 트윈스크롤 터보의 성과다. 사실 애초에 이 엔진이 가진 감성은 꽤나 스포티하다. 실제로 말리부 외에도 쉐보레 카마로에도 적용되어 '스포티한 감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낮은 RPM부터 풍부한 토크를 낼 수 있고, 고 RPM으로 가더라도 쉽게 지치지 않는 모습이다. 게다가 엔진 자체의 회전 질감이나 엔진의 소음도 크지 않아 출력을 즐기는 것 외에도 일상적인 주행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엔진이다. 타면 탈수록, 그리고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엔진이 가진 포텐셜이나 경쟁력시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논란의 대상, 6단 자동 변속기는 사실 제몫을 다한다. 북미와 달리 국내에는 6단 자동 변속기가 장착되며 출시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주행에 나서보면 Gen 3 6단 자동 변속기 자체에는 큰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토크 컨버터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운 변속감 부분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과하게 몰아세우더라도 큰 부족함이 없어 만족스러웠다. 이는 정속 주행은 물론이고 서킷 주행까지도 모두 경험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인상적인 점은 앞서 설명한 요소들만 본다면 차량이 제법 스포티한 쪽으로 치우쳐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주행을 해보면 상당히 나긋하고 상냥하다는 것이다. 중형 세단에게 상당히 높은 출력을 갖췄음에도 차량의 기본적인 성향은 부드럽게 세팅되어 있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이나 정숙성은 감히 동급 최고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엔진의 출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서스펜션과 브레이크는 운전자로 하여금 253마력이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덕분에 운전, 혹은 말리부가 낯선 이라도 손쉽게 다룰 수 있다. 또 스티어링 휠 조향에 따른 반응이 기민한 편은 아니지만 견고한 차체로 기본적인 움직임이 둔하지 않아 다루는 즐거움 역시 느낄 수 있다.
끝으로 효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올 뉴 말리부 2.0 터보는 복합 기준 10.8km/L의 공인 연비를 확보했다. (도심 9.4km/L 고속 13.2km/L) 그런데 정속 주행 시 조금만 신경을 쓰면 곧바로 2.0L 디젤 엔진 수준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매력을 갖췄다. 실제 올 뉴 말리부와 함께 자유로 50km를 주행하며 연비를 측정했었는데 18.3km/L의 평균 연비가 계측되었다.
좋은점: 2.0L 터보 엔진이 내는 풍부한 출력과 완성도 높은 드라이빙
아쉬운점: 타봐야 알 수 있는 쉐보레의 진입 장벽
오랜만에 만난 올 뉴 말리부 2.0 터보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253마력의 출력이나 엔진 자체의 매력, 그리고 변속기와의 조합 등도 좋았고 쉐보레 전통의 견고한 차체가 한층 가볍게 다가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데뷔 직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예측과 달리 현재는 다소 저조한 판매량 때문일까? 국내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지는 만남이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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