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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사제 성폭력 묵인” 주장… 가톨릭 보혁 내분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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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사제 성폭력 묵인” 주장… 가톨릭 보혁 내분 심화

입력
2018.08.27 18:01
수정
2018.08.27 21:55
2면
0 0

보수파, 교황에 이례적 사임 요구

교황 “한마디도 안 할 것” 의혹 증폭

진보파 “교황 흔들려는 시도” 일축

“보혁 갈등, 성폭력 본질 호도” 우려

프란치스코 교황이 26일 아일랜드 방문을 끝내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6일 아일랜드 방문을 끝내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교회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연일 사죄했지만, 논란이 쉽게 잠재워지지 않고 있다. 이를 계기로 가톨릭 교단의 내분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진보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가톨릭 보수파들은 “교황이 성 범죄를 은폐해왔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사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개혁적 성향의 교황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교황을 흔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주미 바티칸 대사를 지낸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는 이날 가톨릭 보수 매체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 범죄를 묵인해왔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을 촉구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서한에서 “그(교황)는 최소 2013년 6월 23일부터는 매캐릭이 연쇄 약탈자(a serial predator)임을 알고 있었다. 교회가 극적인 상황에 처한 이 순간, 교황은 실수를 인정하고 무관용 원칙에 따라 매캐릭의 비행을 덮은 추기경과 주교들과 함께 모두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가노 대주교는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수 성향인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뜻을 꺾는 무리수를 써가며 매캐릭 추기경을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제재를 가했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제재를 거두는 한편 매캐릭 추기경의 명예를 회복시켜줬다고 주장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3년 사임 이전에 매캐릭 추기경의 비행을 보고 받고 미사 집전 금지 등의 처벌을 내렸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과 성향이 유사한 그에게 미국 주교 선발권을 주는 등 복권시켜줬다는 것이다.

2001~2006년 미국 워싱턴DC 대주교를 지낸 매캐릭 추기경은 50여년 전 11세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지난달 미 가톨릭 교회는 자체 조사를 통해 이런 의혹이 신빙성이 있다고 결론지었고, 이후 매캐릭 추기경은 신학대학생 시절 그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다른 이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같은 달 그는 사임했다.

가톨릭에선 매우 이례적인 사임 요구까지 받았는데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가노 대주교의 주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아일랜드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들을 만나 “문서를 주의 깊게 읽고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며 “나는 이것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스스로 결론을 낼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폭로된 가톨릭 교회 성추문. 그래픽뉴스팀그림 3[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폭로된 가톨릭 교회 성추문. 그래픽뉴스팀
[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폭로된 가톨릭 교회 성추문. 그래픽뉴스팀그림 3[저작권 한국일보]2018년 폭로된 가톨릭 교회 성추문. 그래픽뉴스팀

이런 가운데 가톨릭 교단에서는 교황파와 그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보수파인 미국 필라델피아 교구의 찰스 차풋 대주교는 비가노 대주교를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미국 시카고 교구의 블레이즈 쿠피치 추기경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그(프란치스코 교황)는 실수를 하면 인정하는 사람”이라며 교황을 두둔했다. 쿠피치 추기경은 그러면서 비가노 대주교가 서한을 발표한 시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 시기에 서한을 배포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게 잘못 되었고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왜 이제 와서 폭로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T는 “보수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교황의 (동성애 등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이 교회의 권위와 교리를 약화시켜 미래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며 “비가노 대주교의 성명 발표로 가톨릭 파벌 간의 전투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교회 내부의 보혁 갈등이 가톨릭 사제가 저지른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톨릭 성폭력 피해자 네트워크의 피터 이슬리는 NYT에 “성 학대 문제는 주교의 성향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며 “(가톨릭 고위 사제들이) 위기를 교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올 들어 전세계 가톨릭 교회는 잇단 성 추문으로 위기에 봉착해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수 십 년간 300명이 넘는 성직자들이 1,000여명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들통났고, 호주와 남미에서도 고위 사제의 성추문에 대한 교황의 미온적 대응때문에 교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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