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충북 옥천에서 발생한 네 모녀 사망 사건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40대 가장이 저지른 패륜적 범죄로 드러났다.
옥천경찰서는 28일 아내와 7살·9살·10살 세 자매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A(4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빚에 허덕이던 A씨가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여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복부와 손목 등을 흉기로 찔러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에서 "불어난 빚을 감당할 수 없어 혼자 죽으려고 했지만, 남겨진 가족들이 손가락질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검도 공인 6단인 그는 10여년 전 옥천에 들어와 검도관을 운영했다. 한때 관원이 80명을 웃돌기도 했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관원들은 그에 대해 "운동할 때는 매우 엄격하지만, 도장 밖에 나가면 정 많고 마음씨 좋은 무도인"이라고 평가했다.
술,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았던 그는 오로지 가족과 운동에만 열정을 쏟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 딸을 끔찍하게 아껴 퇴근 뒤에는 가족과 어울려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그런 그가 끔찍한 가족 살해범이 돼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겁 없이 진 빚이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그와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부른 셈이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7억원이 넘는 빚을 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제2금융권 대출이거나 사채여서 검도관 운영 수입보다 많은 이자를 매달 부담해야 했다.
그와 가깝게 지낸 옥천군 검도연합회 한 임원은 "한 달 이자가 400만∼500만원에 이른 것 같다"며 "금융기관이나 카드 이자가 쌓이면서 어쩔 수 없이 사채를 끌어다가 빚을 막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왜 거액의 빚을 졌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경찰은 "처음 도장을 차리고 아파트를 구입할 당시 대출금 비중이 높았고, 대전의 한 원룸주택에 투자하면서 이자가 쌓인 것으로 보인다"며 "허투루 돈을 쓴 흔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점차 빚 감당이 어려웠던 그는 최근 자신의 검도관에서 운동하는 대학생 명의로 대출을 받아 쓴 사실이 해당 학생 부모 등에게 알려져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인은 "관원 3명 명의로 대출받은 돈이 1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안다"며 "이 문제로 관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지난 21일 이후 검도관 문을 걸어 잠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일이 터진 뒤 A씨가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극도의 좌절감에 빠져든 것으로 보고 있다.
평소 자신을 믿고 따른 관원한테마저 빚쟁이로 몰리면서 더는 버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A씨는 발견 당시 자해로 인한 과다 출혈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였다. 시간이 좀 더 지체됐더라면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경찰 관계자는 "오랜기간 빚에 쪼들려 막다른 길목에 몰리다 보니 어리석은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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