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말하는 힘이 다분한 그녀였다. 특히나 책 얘기를 할 때는 더더욱 커지는 동공의 그녀였다. 가방 속에서 그녀가 꺼낸 건 달랑 한 권의 책이었는데 두어 시간 얘기를 마친 뒤 나 홀로 카페에 남겨졌을 때 내 마음 속 책장에 다시 꽂아야 할 책이 족히 수십 권은 되는 듯했다. 참 그렇다. 어디 자석 같은 걸 몸에 감춘 것도 아닌데 책은 책끼리 두면 참 잘도 붙는다. 새삼 그걸 깨닫게 해 준 그녀였다.
김민정(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들었어요. 학과 선택에 어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고아성(고)= “워낙에 가고 싶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선배님들이 넌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연기한 사람이니까 인문학을 공부하면 어떻겠냐,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면 어떻겠냐,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되게 만족하고 있어요, 제 선택을요.”
김= “이름이 ‘아성’이란 말이죠. 특히 ‘고’라는 성씨하고 붙었을 때 그 품새가 커지는 이름 같단 말이죠.”
고= “제가 ‘우리별 1호’가 뜨기 전날인가 태어났어요. 나 ‘아(我)’에 별 ‘성(星)’자를 쓰는데 아빠가 지어 주셨어요. 그 며칠 전인가에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는데요, 아빠가 거기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와 관련한 이름을 고심했었다는데 고영조가 될 뻔했으려나요, 아무튼 다행히 별로 갔네요(웃음).”
김= “궁금한 걸 몇 자 적어오긴 했는데 안 펴고 하려고요. 어쩌면 이렇게 웃음에 구김이 없을까요.”
고= “정말요? 저는 되게 긴장하면서 왔거든요. 잠깐 제가 메모한 것 좀 꺼내도 될까요?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요, 정말 좋아해서요, 책 얘기를 하다 보면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할까 봐서요, 끝도 없이 풀어질 것 같아서요, 그것만 걱정하면서 왔어요.”
김= “아무렴 어때요. 그런데 웃긴 얘기긴 한데, 좋아하는 사람을 참 좋아하죠? 특히나 유머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지는 스타일 같아요.”
고= “어머! 어쩜! 저는 유머러스한 사람을 최고의 이상형으로 꼽아요. 왜냐면 유머를 가진 사람은 내면에 여유가 있다 싶거든요. 인생에서의 어떤 힘든 변곡점들을 마주한다 할 때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건 현명하다는 증거 같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그런 얘기도 해요. 웃긴 사람들이 연기도 잘한다, 라고요. 정말 너무 반가워요!”
김= “반갑다니, 동의를 표하는 말의 추임새가 참 예쁘기도 하네요(웃음). 배우 생활이 그러고 보면 꽤 된 거지요?”
고= “네 살 때 그때 제가 부산에 살았는데요, 엄마랑 길을 가다가 우연히 ‘너 모델 해 볼래?’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엄마가 ‘해볼래?’ 하기에 뭔지도 모르고 응,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고는 모델과 연기자의 구분 없이 몇 개 작품을 하다가 만난 게 ‘괴물’이었어요. 그때가 열네 살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자란 부분도 많고 시행착오도 두루 있었지만 뭔가 제가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판단을 했던 첫 기억 같기도 해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정말 잘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스스로의 결심이 컸던 처음 같아요.”
김= “‘괴물’의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났을 때 말이에요.”
고= “일단 되게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 국어 시간을 엄청 아꼈거든요. 문학 선생님이 정말 재밌게 수업을 해 주는 좋은 분이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왜 은유 찾고 비유 골라내고 하는 식의 한국적 교육 방식에 큰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게 아니었다면 전 책 읽는 방법을 끝끝내 몰랐을 거예요. 아무튼 그때 수업 시간에 윤흥길의 ‘장마’를 읽었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소설이 이렇게까지 먹먹하고 슬플 수가 있구나, 하는 상태에서 ‘괴물’ 시나리오를 받았던 건데 그때 처음 문학이라는, 텍스트라는 활자가 주는 슬픔을 격하게 인지했던 것 같아요.”
김= “‘소나기’도 아닌 ‘장마’라니!”
고= “김만중의 ‘구운몽’도 기억나요. 그게 정말 허망한 얘기잖아요. 선생님이 노골적으로 말씀을 해주신 건 아니었지만 여기서 너희가 다 같이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게 한낱 꿈일 수도 있지 않겠냐, 그런 뉘앙스를 풍기셨을 때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텐데 반 친구들과 같은 지점에서 한숨을 쉬는 그 타이밍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 처음 사람의 ‘함께’라는 걸 인지했던 것도 같고요.”
김= “공감하는 감수성이 퍽 예민하다 싶어요.”
고=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제 장점이 공감의 능력 같기는 해요.”
김= “그렇게 온몸으로 흡수해서 읽은 첫 책, 기억이 날까요?”
고= “제가 아홉 살 때 제목에 이끌려서 ‘아홉살 인생’을 처음 봤거든요. 얼마나 좋아했냐면 그 책의 저자인 위기철 선생님에게 편지도 쓰고 그랬어요. 왜 수업 시간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 편지쓰기, 그런 것도 하잖아요. 답장은 안 왔지만… 읽은 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정말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순간순간이 자기만의 인생이듯이 인생은 결코 혼자 걸어가야 할 외로운 길이 아님을, 나는 아홉살 그때 배웠다.’ 특히 이 말이요. 맞아요. 저는요 뭔가를 항상 좋아하는 힘으로 사는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좋아하고 뭔가에 빠져 있고 뭔가에 열광하는 그런 마음으로 호들갑을 떨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김= “아성씨에게는 특히 ‘책’이 그런 좋음의 한 예라는 걸 테고요.”
고= “네, 맞아요. 솔직히 저 오늘 시인님 만난다고 해서 시인님이 낸 책은 한 권이라도 읽고 가야지 해서 시집은 읽고 왔거든요.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읽고 만나는 것과 아, 읽었어야 했는데 하는 것과 마음가짐이 너무 다르잖아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책이 어떻게 담기는가 하고 물으면 전 그 ‘마음’과 ‘가짐’을 떠올려요. 예컨대 저는 박완서 작가님을 너무 좋아하는데요, 제가 ‘오빠생각’이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정말 그분 책을 많이 읽었거든요. 비슷한 주제를 가진 것도 아닌데 제가 도움을 받은 건 이 하나의 문장이었어요. ‘우리는 이제 마지막 남녀가 아니라 수많은 남자 여자 중의 하나였다.’ 이게 너무 와 닿는 거예요. 연애사 한마디로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알겠다 싶은 거예요.”
김= “아까 처음 인사할 때 환히 웃었잖아요. 순간 박완서 선생님의 웃음과 닮았네 싶은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반달 눈이 되면서 입가가 동그랗게 올라가면서…”
고= “어머. 잠시만요.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저 오늘 이 책 갖고 왔거든요.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드라마 촬영할 때 사뒀다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거든요. 박완서 선생님의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요. 저는 박완서 선생님을 의식적으로 따라 해요. 뵌 적은 없지만 소설을 읽고 성격도 따라 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거 처음 읽고 제 성격의 콘셉트를 잡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영향을 지금까지도 되게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요.”
김= “세상에나 이 오래된 책을… 부산에 가면 헌책방에 들르는군요.”
고= “네, 단골 책방을 다 만들어놨죠. 에이, 저도 술 먹고 놀다가 술 깰 때 책 보러 가요. 왜 헌책방 가면 발굴의 의지가 막 불타잖아요. 제가 갈 때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찾거든요. 그 책이 너무 읽고 싶어서요.”
김= “이런, 그 책은 아성씨, 지금 서점 가면 바로 살 수 있어요. 팔고 있어요. 내가 줘야겠다.”
고= “어머 절판된 거 아니었어요? 아, 다행이다. 그럼 저 빌려주세요. 사랑의 시작을 롤랑 바르트로 했어야 하는데 아니 에르노로 시작해서 저 망했거든요. 맞아요, 저 엄청 사랑에 무모해요.”
김= “저도 잘은 모르지만 무모할수록 순도가 높은 게 사랑 같거든요. 돌진하고 부딪치고 할 때의 그 사랑을 누가 무엇으로 이길 수가 있겠어요.”
고= “최근에 제가 아니 에르노의 ‘집착’을 다시 읽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 다시 펼치니까 제가 그때 이해를 보류해놓은 구절이 있더라고요. 무슨 의미인 줄은 알겠으나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그랬던 기억이 확 나는 거예요. ‘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온전히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유보를 해뒀다는 게, 이 부분을 묻어두었다는 게 진짜 기특하더라고요.”
김= “‘기특하다’라는 말이 이때 이렇게 쓰이면 이렇게나 예쁜 거군요. 국어사전 좋아하죠?”
고= “네, 많이 찾아 봐요. 찾다가 꽂히는 말은 습관적으로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쓰기도 해요. 예컨대 ‘황황하다’라는 단어가 있어요. 찾아보면 ‘아름답고 성하다’라는 뜻으로 나오거든요. 뜻도 그렇지만 황황하게, 황황히, 그렇게 발음할 때 이 단어를 품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좋아할 만한 말들은 그렇게 조금씩 담아왔던 것 같아요.”
김= “실은 아니 에르노를 읽었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요.”
고= “고등학교 때 정말 열심히 읽었던 작가예요. 프랑스 갔을 때 가장 처음 한 일이 아니 에르노의 책을 산 거였는데 막상 프랑스 친구들 만나서 아냐 물으니까 잘 몰라요들. 그래서 그렇게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구나, 알았지요.”
김= “유독 한국에서 더한 인기를 자랑하는 외국 작가들이 있지요. 성향으로 보자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도 좋아할 법하고요.”
고= “맞아요. 그 중에서 ‘이게 다예요’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책이에요. 제가 일기 형식은 거의 무조건 좋아하는 편인데요, 특히나 그 책은 제가 너무나 쓰고 싶은 이상적인 일기 느낌이라 거의 외우고 다녀요. 너무 좋아서요.”
김= “일기를 열심히 쓰나 보군요.”
고=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써오고 있어요. 음악 하는 네스티요나 언니가 일기를 써보라고 권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3년 전에 혼자 놀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하나 만들었는데요, 거기서 책도 보고 연기 연습도 가끔 하고요, 영화도 보고 그러는데 주로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집에서는 일기를 몰래 썼거든요. 뭔가를 쓴다는 걸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게 우리 집에서는 되게 부끄러운 일이었거든요(웃음). 온전한 제 공간에서 심지어 일기를 잘 쓰려고 예쁜 책상도 샀어요. 그러면서 생긴 변화가 뭐냐면요, 제가 막 거기에다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제게 애교를 부린다는 게 저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어요. 막내라서 어리광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되게 진지한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알게 된 건데요, 예전에는 일기가 너무 창피했거든요. 이제는 일기 빼고 다 창피한 거 있죠(웃음)?”
김= “음, 그거 뭔가 생각할 만한 여지의 문장이다 싶은데요.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읽고 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촬영하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아요.”
고= “가족의 죽음이라는 게 제 경험에는 아직 없다 보니 절대 모르는 영역이고 해서 못하겠다 이미 감독님께 연락을 드린 뒤였거든요. 그런데 ‘애도일기’를 사서 읽게 된 거예요. 그러고는 감독님께 장문의 메일과 전화로 출연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저는 애도라 할 때 이런 구절이 너무 무서웠어요. ‘마망이 살아 있던 동안 내내 나는 그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게 나의 노이로제였다. 그런데 지금 나의 애도는 말하자면 노이로제가 아닌 단 하나 나의 부분이다. 이건 어쩌면 마망이 떠나가면서, 마지막 선물처럼, 나의 가장 나쁜 부분, 나의 노이로제를 함께 가져가버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머니가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을 어머니의 죽음이 가져갔다… 이런 대목이 제게 참 크게 왔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책은 연기 위에 얹히는 감정이 아니라 정말 저도 모르게 연기 밑을 받치는 감정 같아요. 배우로서 책 읽는 기쁨은 이런 데서 가지는 듯해요.”
김= “요즘은 무슨 책들 읽고 있어요?”
고= “아까 말씀드린 박완서 선생님 책 아직 다 못 읽어서요, 아주 천천히 읽고 있고요, 정세랑 작가님의 ‘보건 교사 안은영’을 재미있게 봤어요. 귀여운 게 가장 큰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배우 류현경 언니에게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졸라서 받은 책이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이라고, 영화 ‘캐롤’의 모티브가 된 책이 있거든요. 그거 최근에 읽었고요. 아, 맞다, 연기를 시작하시거나 공부하고 싶은 분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이 지금 떠올랐는데요, ‘사기열전’이요. 진짜 완전 재미있기도 하고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있다 싶어서요.”
김= “책 말고도 좋아하는 게 참 많다 싶은데 노래 부르는 것도 그중 하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복면가왕’을 봤거든요. 장덕의 ‘님 떠난 후’를 부르는데 자신에게 잘 맞는 목소리를, 분위기를 귀신같이 알더라고요.”
고=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단 하나의 역할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가수 장덕이에요. 진짜예요.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노래만 아빠 덕분에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 왜 영화들 보면 일대기가 아니라 어느 한 시절을 중심으로 만들기도 하잖아요. 전에 그런 인터뷰를 봤어요. 어릴 때 가족들이 어떤 사정으로 말미암아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장덕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대요. 그때 엄마가 옆에서 간호를 해줬고 그게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고요. 저는 영화로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먹먹하고 안타깝고 괜한 향수가 느껴지는 그런 영화요. 에이, 저는 시나리오 쓸 재주는 못 되고요, 메모나 끄적거리는 정도고요, 어쨌거나 저한테 장덕님은 절대적인 제 개인의 위인이세요. 노래 하나 더요? 고르자면 박성신의 ‘한 번만 더’요.”
김= “최근에 어떤 ‘좋음’을 경험한 게 있을까요? 좋음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잖아요.”
고= “얼마 전에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마치고 베트남 다낭으로 ‘포상휴가’를 다녀왔어요. 3박 4일 동안 정말 신나게 잠도 안 자고 놀았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날에 못 놀겠는 거예요. 그때 ‘나는 이 포상휴가까지 끝나고 나면 아마 허탈감이 시작될 거다, 아니 벌써 시작된 것 같다’라며 되게 만족스러운 일기까지 썼는데 뭔가 성에 안 차는 거예요. 그때가 새벽 5시인가 6시인가 해 뜰 무렵이었는데 뭔가 부족하다 싶어 밖에 나가 사진을 찍었어요. 똑딱이 카메라로 그냥 딱 찍은 거였는데 돌아와서 보니 일기보다 그게 그 순간에 나를 더 정확하게 대변했다 싶더라고요. 최근에 나의 좋음이라면 그랬어요.”
김=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거, 스스로 잘 알고 있지요?”
고= “취향으로 보자면 저는 과거, 과거, 과거, 과거지향적인 사람이거든요. 전자책이요? 읽다 포기했어요. 연필요? 엄청 좋아하죠. 필기구? 아실 거면서요. 노트요? 모닝글로리에서 살아요. 저에게 낭만은 삶이에요. 인생 전부죠. 어떻게 보면 책도 낭만 그 자체잖아요.”
김= “근데 아성씨에게 책이란 정말 뭔 것 같나요?”
고= “큰 거요. 인생에서 제일 큰 거요. 영화보다 음악보다 사진보다 큰 거요. 취향이다 아니다 할 수 없는 거요. 그래서 무언의 압박감이 있지만 그걸 즐기면 비교적 덜 실수하게도 해주는 거요. 그 안도를 느끼게도 해주는 거요.”
김= “세상에나… 책 만드는 일에 더한 책임감을 얹는 말이네요.”
고=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 책임감이거든요. 저는 책임감이라는 말에 너무 약해요. 저는 책임감이 그 어떤 고통보다 크다는 걸 알아요. 제가 감명 깊게 보는 작품들도 항상 책임감의 무게를 다루는 것들이더라고요. 뭔가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책임감으로 살아야 하는 어른의 마음은 정말 무거운 것 같아요. 그걸 책으로 덜어간다 싶어요.”
김= “전 아성씨에게 오늘 너무 배운 것 같은데요.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혹시 ‘박완서의 말’이라고… 아직 안 보셨구나. 제가 다음에 볼 때 드릴게요.”
고= “정말요? 정말 너무 반가워요!”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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