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상 질병ㆍ부상 아니어도
공무원 규정엔 60일 요양 가능
고용부 근로기준법에는
‘개인적 사정’ 병가 기준 없어
눈치 보며 제대로 사용 못해
정보기술(IT) 관련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민영(28)씨는 지난 여름 지독한 몸살감기 증상에 회사를 며칠 쉬고 싶다고 상사에게 말했다가 ‘감기 가지고 유난 떤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열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 겨우 점심시간에 틈을 내 병원을 찾은 노씨는 감기가 아닌 대상포진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상사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는 “상사가 ‘옆 팀 누구는 대상포진에 걸렸어도 회사를 잘만 나오더라’고 눈치를 줬다”며 “결국 병가는 따로 줄 수 없으니 정 쉬고 싶으면 연차 유급휴가를 주말에 붙여 쓰라고 하더라”고 하소연했다.
유급휴가(병가)를 줄 수 없다는 노씨의 회사는 근로기준법 위반일까.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업무 상 질병 또는 부상이 아닌 ‘근로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한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별도의 규정이 없다. 노씨 회사의 병가 거부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반면 공무원은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른 병가가 있어 공무상 질병ㆍ부상이 아니더라도 연간 60일 한도에서 요양이 가능하다. 민간기업에도 공무원 복무규정에 준하는 병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 병가는 유럽 대다수 국가를 비롯해 아시아에서도 중국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140여개국에서 운영 중이다. 관련 제도가 없던 미국도 최근 일부 주를 시작으로 유급병가 제도를 민간으로도 확대하는 추세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대기업 등 일부 기업은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병가 규정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연간 60일의 병가 중 6일까지는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사용이 가능한데 비해 사기업은 단 하루를 쉬더라도 병원의 진단서가 있을 때에만 이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아 병가를 내기가 쉽지 않다. 병가 규정이 있더라도 진급에서의 불이익을 우려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승무원 윤모(27)씨는 “비행기 착륙 때 짐을 내리다 허리를 삐끗했는데 병가를 쓰면 인사평가에서 악영향을 받을까봐 쉬쉬하면서 아픈 티 조차 못 냈다”고 전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진단서가 없어도 감기 증상만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병가를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꾀병결근은 사회적 부담 가중”
법제화 의견 속 부작용 우려도
물론 병가 법제화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병가가 민간으로 확대ㆍ도입되면 ‘꾀병 결근’을 비롯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져 오히려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병가를 시행 중인 공직사회에서는 악용 사례 적발이 빈번하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실 조사 결과 식품의약품안전처 A과장은 추석 연휴 무렵 교통 사고가 났다며 2주간 병원에 입원, 추석을 포함해 3주를 쉬었다. 그러나 A과장의 진단서에는 퇴원일도 기재되지 않았다. 자신의 토익 시험 공부를 위해 병가를 부정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도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내부감사에서도 한 직원이 약물치료를 한다며 50일 넘게 병가를 내고 중국으로 출국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업무 외 질병ㆍ부상으로 인한 병가까지 법으로 규제하면 사용자에 지나친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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