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화가 윤석남展
팔순 앞두고 자신 모습 화폭에
모성을 주제로 여성의 삶을 다뤄 온 작가 윤석남(79)이 자신의 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팔순을 앞두고서야 자신을 돌아볼 용기가 생겼다는 작가가 그린 자신의 모습은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이다. 그가 그려 왔던 여성과 똑 닮았다. 윤석남은 “여성을 주제로 40년간 작업을 했는데도 항상 미완의 느낌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어머니고, 여성의 삶을 살고 있어 여성의 삶을 풀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화상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을 위해 3년 전부터 불화 전문가를 통해 채색화도 배웠다. 조선시대 민화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과 그 선의 색과 아름다움이 여성의 모습을 그리기에 어울린다고 판단해서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 화가 윤두서(1668~1715)의 작품을 보고 채색화를 배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교하면서도 거침없는 붓질과 색감에 끌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림을 보러 갔다”고 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의 결과가 4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는 ‘윤석남’전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 속 그는 화실과 서재 등을 배경으로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당당하게 앞을 응시하고 있다. ‘인형’처럼 예쁜 여성도, 집안일 등에 억눌린 여성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감이 가득한 여성이다. 윤석남과 그의 어머니와 언니 등 여성 가족들을 그린 ‘우리는 모계가족’은 한복을 입고 다소곳한 자세의 전통적인 여성상 같지만 표정에서 여유롭고 자애로운, 그러면서 당당함이 묻어난다.
지하 2층에 마련된 전시실은 눈부신 핑크색으로 도배됐다. 핑크색 서양식 소파가 놓여져 있고 위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의 그림이 올려져 있다. 소파 아래에는 핑크색 구슬들이 깔렸다. 벽면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1만가지 들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핑크색 한지가 붙어 있다. 공간은 어딘가 불편하고, 인위적이다. 1996년 선보였던 ‘핑크룸’을 다시 재현해 현실에 억압된 불안한 여성을 나타낸 작품이다.
만주에서 태어난 윤석남은 대학 중퇴 후 딸로 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살다 나이 마흔이 돼서야 화가가 됐다. 늦게 출발했지만 빨래판 등을 이용해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그 위에 작품을 그린 ‘어머니’, 모성의 강인함을 999개의 조각으로 표현한 ‘999’ 등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활발하게 선보이면서 대표적인 여성주의 작가가 됐다. 자신과 역사 속 여성들을 다룬 작품 ‘금지구역Ⅰ’이 영국 유명 미술관인 테이트미술관에 소장됐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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