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4관왕 ‘긍정 여왕’ 나아름
개인도로 앞두고는 돌 밟는 사고
크게 미끄러져 타박상 입었지만
시합 집중 필요한 팀을 위해 함구
“함께한 동료 있기에 포기 못 해
도쿄올림픽에 모든 걸 바칠래요”
나아름(28ㆍ상주시청)은 지난달 22일 104.4㎞(개인도로)를 달렸다. 하루 건너 뛰고 24일 18.7㎞(도로독주)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 이미 금메달 2개를 목에 건 뒤 27~28일 12㎞(팀추월)를 전력 질주했다. 31일에는 25㎞를 두 명이 교대로 달리는 매디슨에 출전했다. 열흘 동안 160㎞ 넘게 달린 나아름의 목에는 금메달 4개가 걸려 있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이자 사이클 최초 4관왕이다. 나아름은 2일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라 실감이 안 난다”며 비명을 질렀다.
나아름은 사실 경기를 코앞에 두고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개인도로 하루 전인 지난달 21일 훈련 도중 인터벌을 하다가 코너에서 돌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 놀랍게도 나아름의 몸과 자전거 모두 무사했다. 그는 “그렇게 미끄러졌는데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까진 곳도 하나 없고 타박상 정도에 그쳤다”고 했다. 나아름은 “인도네시아 도착해서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완벽하게 시합준비가 됐고 몸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며 “사고를 당하고 나선 몸을 더 이상 훈련에 쓰지 말고 시합 때나 쓰자는 생각이 들어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아프긴 했지만 시합 앞두고 예민한 팀 분위기를 해칠 수 있으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감독님께 부탁했다”며 활짝 웃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고 강철 체력이라도 열흘 간 네 종목에 출전하면 몸도 마음도 지칠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이를 꽉 깨물고 달렸던지, 이가 시려 식사가 힘들 정도였다. 나아름은 “도로 종목 금메달 2개 딴 뒤에는 단체종목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 틈도 없었는데, 팀 추월까지 금메달을 따고 나니 감기 몸살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마지막 시합도 혼자 타는 종목이 아니었기에 ‘경기 끝나고 더 아파도 좋으니, 하루만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고 되돌아봤다. 나아름은 “4관왕을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동료가 함께했다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사이클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4년 전 인천 대회(금3ㆍ은4ㆍ동1)에 비해 큰 발전이다. “저 자신도 놀랐다”고 말한 나아름은 지난해 생긴 진천선수촌 벨로드롬을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지난해 9월 진천 선수촌이 문을 열기 전까지 선수들은 실외 벨로드롬이나 경륜장을 전전했다. 대표팀이 한 곳에 모여 훈련할 환경이 갖춰지며 남자선수들과 합동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는 “남자선수들과 훈련을 하다 보니 시합이 오히려 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대회 개막 한 달 전 인도네시아 현지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훈련 땐 그렇게 높아 보였던 언덕도 막상 실전에서는 해볼만하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나아름의 시선은 이미 2020 도쿄 올림픽으로 향했다. 2일 귀국한 그는 딱 하루 휴식을 취한 뒤 바로 훈련에 돌입한다. “사이클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올림픽이 꿈이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꿈이다”라고 말하는 나아름은 아직 올림픽과 인연이 없다. 2012 런던올림픽 개인도로에서는 세 번이나 넘어지고도 끝까지 달려 13위로 마무리했다. 2016 리우올림픽 개인도로에서는 30위에 그쳐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나아름은 너무 높게만 느껴졌던 세계의 벽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걸 직접 느꼈다고 한다. 그는 “발가락 골절 등 시련을 딛고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해 금메달을 땄다”며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한 것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도쿄에 제 모든 걸 두고 오겠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카르타=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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