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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차르 표트르의 수염세(9.5)

입력
2018.09.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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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국 표트르 대제가 1698년 오늘 수염을 금지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그는 수염에 세금을 부과했고, 잡세의 징표로 저 토큰을 발행했다.
러시아제국 표트르 대제가 1698년 오늘 수염을 금지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그는 수염에 세금을 부과했고, 잡세의 징표로 저 토큰을 발행했다.

오스만제국에 기 죽고 흑해 진출로마저 막힌 조국 모스크바공국의 곤궁을 보고 자란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 알렉세예비치)는 재위(1682~1725) 직후부터 서유럽 국가에 공식 사절단을 파견, 선진 기술문명 특히 해외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네덜란드와 영국의 조선술과 해군력을 배우는 데 열을 올렸다. 그 자신도 포병 부사관 ‘표트르 미하일로프’라는 가명으로 사절단에 합류, 1697~98년 1년여 간 유럽을 시찰했다.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선박 건조기술을 익혔고, 영국서 수학, 기하학, 대포 조작술 등을 공부했고, 영국 의회를 견학하기도 했다.

비록 탈도 많았지만, 표트르는 군대를 포함한 정부기구와 경제, 달력과 글쓰기 스타일을 포함한 문화, 종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도 전제적인 개혁으로 전근대의 러시아를 획기적으로 근대화했다. 그의 저돌적인 서유럽화 정책 중에서도 가장 돌출적인 조치가 이른바 수염세(Beard Tax) 도입이었다.

유럽 시찰서 돌아온 직후인 1698년 9월 5일, 그는 왕족과 귀족, 군 관료 등을 궁 만찬에 초대했다. 좌중이 모인 자리에서 표트르는 미리 대기시킨 이발사를 불러 가장 먼저 자기 수염을 자르게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러시아 남성은 수염을 기르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수염을 깎게 한 이유는 유럽서 만난 근대화한 서구인 대다수가 수염이 없어서였다. 그에게 수염을 자르는 건 전근대와의 선언적 단절이었다. 대중의 반발이 거셌고,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의 저항이 특히 심했다. 그들에게 수염 없는 얼굴은 종교적 불경(不敬)이었다.

다른 중차대한 개혁 과제들이 산재한 마당에 수염에 발목이 잡힐 수 없다는 판단도 했겠지만, 당장 개혁 예산도 필요했던 표트르는 수염세라는 묘안을 냈다. 기르고 싶으면 기르되 대신 세금을 내라는 거였다. 세액은 귀족과 부유한 상인들은 연간 최대 100루블, 서민 농부들은 1~2 코페이카였다. 납세 증빙 자료로 ‘토큰(token)’을 발행, 귀족은 실버 토큰, 서민은 구리 토큰을 항상 휴대해야 했다.

수염세를 처음 도입한 건 영국 헨리8세였다. 그에게 수염은 전근대의 상징이 아니라 신분ㆍ지위의 상징이었다. 수염세는 일종의 부유세여서 귀족에 한해 지위에 따라 누진세율을 걷었다. 그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2주 이상 수염을 기른 모든 이들에게 세금을 매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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