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개발ㆍ임대업자 세제감면 등 ‘뒤집기 경쟁’
결혼식 날 안 잡은 예비 부부 “하루빨리 집부터”
“정부 부동산 정책 꼴을 보니 집값은 절대 못 잡게 생겼다는 게 양가 부모님의 공통 의견이었다. 예물이나 예단, 혼수 등은 없애거나 최대한 줄이고, 신혼 부부 살 집부터 하루 빨리 구하자고 합의를 보셨다.“
아직 결혼식 날도 못 잡은 예비 신부 표모(32)씨는 지난 주말 예비 신랑과 함께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돌아다니게 된 사연을 3일 이렇게 말했다. 표씨는 “우리처럼 급하게 집부터 사려는 예비 부부는 물론 투자자들까지 넘쳐 어딜 가나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ㆍ여의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보류하고 전세자금 대출 기준도 하루 만에 뒤집히자, ‘정책 혼선이 있을 때가 투자의 적기’라며 매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본인이 발표한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도 8개월 만에 바꾸는 판인데 집값을 잡을 수 있다는 정부 말을 이제 누가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금융위원회, 당정청까지 부동산 정책 혼선과 뒤집기가 경쟁하듯 이어지며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현장에선 정부에 대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며 수요자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를 믿으며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리던 이들을 매수세로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지난 2일 김 장관의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 재검토 발언이다. 정부는 3일 부랴부랴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을 전면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국토부), “시장과열 지역 중 새 임대주택 등록 부분에 한정해 정책 수정을 검토 중”(기획재정부)이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일선 구청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담당하는 주택관리과 직원들은 아침부터 항의 전화와 문의로 몸살을 앓았다.
국토부는 지난 1월에도 재건축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지 여부를 놓고 열흘 사이 입장을 번복한 전력이 있다. 당시 국토부의 오락가락 행보는 결국 강남4구의 집값 상승만 더 부추겼다.
서울시와 금융 당국의 설익은 정책 발표와 번복도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박 시장은 용산ㆍ여의도 전면 개발 계획 발표 48일 만인 지난달 26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개발을 전면 보류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입장 번복은 이미 용산과 여의도는 물론 마포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후였다. 박 시장이 번복에도 집값 상승세는 오히려 서울 강북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강북의 ‘노도강’(노원ㆍ도봉ㆍ강북구)의 아파트는 최근 한달 사이 호가가 수천만원씩 올랐다.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 인근 중개사무소엔 10여명 이상의 매수 대기자 이름이 적힌 수첩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전세대출 자격 요건을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로 갑자기 강화했다 실수요자들의 질타에 이튿날 곧바로 이를 수정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여당과 청와대의 조바심도 시장의 불안요소 중 하나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산하 재정개혁특위 논의까지 거쳐 6억원 초과 3주택 이상 보유자 종합부동산세율을 0.3%포인트 추가 과세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했다. 그러나 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종부세를 추가로 강화해야 한다”며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부가 공급 대책을 이른 시일 내 제시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압박했다. “공급은 충분하지만 일부 부동산 투기세력이 문제”라는 정부의 기본 인식과는 정반대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과 교수는 “정부가 특정 지역(강남)과 싸우는 데 집중하고 주간 단위 가격상승률에 집착한 나머지 정책 신뢰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효과를 보기도 전 정책을 뒤집는 것은 일관성과 신뢰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며 “제발 시장의 작동 원리를 살펴가면서 길고 넓게 보고 정책을 수립하라”고 주문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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