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관련한 기사를 쓰다 보면 유독 독자들이 분노하는 내용들이 있다. 동물 학대, 그리고 동물 유기에 관한 것이다. 매주 온라인에 반려동물이 버려진 사연과 함께 새 가족을 찾아주는 코너를 쓰고 있는데 그 중에는 “언젠 가족이라더니 어떻게 버릴 수 있냐” “끝까지 돌볼 자신 없으면 아예 키우지를 말라”는 댓글이 상당히 많다.
지금까지 180여 마리의 유기동물을 소개하면서 버려진 이유, 과정을 봐왔다. 매년 발생하는 약 10만 마리의 유기동물 가운데 극히 일부이지만 사연은 제각각이다. 하나 둘씩 버려진 동물을 구조해 기르다 돌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서 사람과 동물 모두 불행해진 경우도 있고, 해외에 간다고 7,8년을 기르던 개를 다시 보호소에 돌려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미용실에 맡기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동물만 남겨진 안타까운 사연도 기억에 남는다.
버려진 동물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사람에게 학대를 당했더라도, 자신을 버렸더라도 그저 사람이 좋다는 동물들이 있다. 이럴 땐 ‘왜 동물들은 속도 없을까’ 생각도 하지만 고마운 마음도 든다. 반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동물들도 있다. 이들에게 사람은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동물들이 입양된 사례를 보면 사람을 좋아했든 두려워했든 새 가족을 만나면 표정부터 바뀐다는 건 공통점인 것 같다.
얼마 전 한 저녁 모임에 갔다. 어느 모임에 가도 자연스럽게 한번쯤은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얘기를 하다 보면 대부분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적어도 예전에 길렀던 경험들이 있다. 그러다 ‘유기동물 가족찾기 코너’에 등장할 사례를 듣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 부모에게 맡겼는데 그 집에 있던 나이 많은 반려견이 피부병이 심해 각질이 떨어졌고, 결국 부부의 눈총을 못이긴 부모가 개를 공장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개는 식음을 전폐하고 5일만에 죽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게 “최악의 경우네요”라고 말을 뱉었고, 상대방의 표정은 잠깐 어두워졌다. 또 하나는 아파트에서 키우다 활동성이 많고 크기도 커서 시골집에 보냈는데 마당에 목줄이 매인 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출산이나 임신에 의해 동물이 버려지거나, 키우기 어렵다고 시골집으로 동물이 보내진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 날 동물보호 활동가로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수도권에 있는 연립주택 경비실에서 진돗개를 키우던 중 한 주민이 밥을 먹던 그 개를 건드려 물렸다는 것이다. 상처가 심각하진 않았지만 주민들은 이 개를 안락사를 할지 말지 투표를 했고, 결국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뒤편에 묶어서 키우는 것으로 결론 났다고 했다. 주민들은 진돗개의 생명을 자신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 때문에 개를 쫓아냈거나 시골로 보냈거나 안락사 여부를 투표한 사람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이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정성을 쏟을 수 있는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려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젠 흔해진 문구가 실생활에서는 잘 적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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