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적인 경제난에 고통받는 국민
무능ㆍ부패한 정부 규탄 도화선 돼
예산 축소로 운영 어려움 겪어와
유물 90% 소실… 화재 원인 못밝혀
“박물관이 아니라 브라질이 불 탔다.”
3일 오전(현지시간) 밤사이 불타 오르던 시뻘건 화염이 걷히고 폐허로 변한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국립박물관 정문 앞. 장례식에 참석하는 듯 검은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박물관 직원과 인류학자들과 함께 수백 명 시민들이 몰려 들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처참한 몰골에 망연자실하는 것도 잠시, 이들은 화재를 제대로 막지 못한 정부의 무능에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장 확인을 요구하며 박물관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이번 박물관 화재가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미셰우 테메르 정부를 규탄하는 민심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당장 10월 대선을 뒤흔들 정치적 이슈로도 부상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브라질 국민들은 잿더미가 된 박물관의 모습을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 빗대며 더욱 애통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복되는 부정부패와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불황, 재정난으로 중단된 공공서비스 등 브라질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빚어낸 참사라는 것이다. 역사학도인 엠마누엘 메데이로스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병원에 의사가 없고, 교사들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박물관뿐 아니라 이 도시가 잿더미로 변했다”고 성토했다. 고교 교사 호자나 올란다는 “이 불은 브라질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한 짓”이라며 “그들은 우리 역사를, 또 우리 꿈을 태워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브라질 경제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가 8%를 기록하는 등 만성적인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시 당국 역시 빚더미에 올라 있는 처지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 투자를 쏟아 붓는 사이, 교육 문화 복지 등 사회 인프라는 뒷걸음질 쳤다. 올림픽 경기장을 짓느라 박물관 개보수 작업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브라질국립박물관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브라질 공공 서비스의 축소판인 셈이다. 실제 시 당국의 예산이 60% 가까이 줄어들면서 기본적인 운영조차 버거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박물관 운영에 관여하는 교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청소 직원들에게 월급을 줬을 정도다. 그나마 비치돼 있던 연기 탐지기는 작동하지 않았고, 소화전 2개는 물이 마른 상태였으며, 그 흔한 방제 시설인 스프링쿨러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알렉산드레 파체코 상파울루대 경영학과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의 돈이 (무능과 부패로) 거덜나고 있다. 불운하게도 국립박물관이 그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화재로 1만2,000년 전 인간 두개골인 ‘루지아’ 등 2,000만여 점 유물 중 90% 이상이 소실됐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화재 원인과 관련해선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전기 합선이나 열기구에 의한 접촉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브라질 당국은 박물관을 재건하는 데 초기 비용으로 1,500만 헤알(약 40억2,000만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국제사회에도 지원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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