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사태 책임 형사처벌 0명… CEO들 되레 보너스도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교훈은 시장을 경제논리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기관을 견제하는 파수꾼으로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금융에 대한 체계적 관리 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금융기관의 역할 정립 및 소득 불평등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 주문이다.
◇금융규제의 적정선을 찾아라
리먼 브라더스 파산의 핵심은 파생금융상품(부채담보부증권ㆍCDO)에 대한 위험성을 미국 정부가 일찍이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융상품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상품의 구조가 복잡하게 설계돼 있었던 탓에 부실함이 감춰졌다. 당시 월가와 신용평가기관 등은 이런 위험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오늘날도 비트코인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산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새로운 리스크에 대한 대비 필요성은 존재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과제는 금융시장의 발전을 독려하면서도 소비자를 보호하는 적정한 규제선을 찾는 것”이라며 “’금융상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소비자에 대한 ‘사기’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도 손봐야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형사 처벌을 받은 자가 없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심지어 파산 이후에도 리먼 브라더스의 최고경영자들은 재직 당시 벌어들였던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고스란히 챙기는 등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도 금융권에 대한 책임 강화를 촉구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논의가 거센 상황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2008년 이후 과거보다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는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이에 비해 제재나 처벌에 관한 법과 제도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최근 은행권에서 드러난 부당한 대출 가산금리 산정 사태에서도 이렇다 할 관련자 처벌이 없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금융의 역할은 실물경제 후원”
실물경제를 후원하며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금융기관이 스스로 탐욕의 주체가 되지 못하게 막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은 “금융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제조업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금융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돈 벌기에 매몰될 경우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이 비도덕적인 영업에 나서지 않도록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태윤 교수는 “현재 금융당국의 규제 방향은 발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보다는 특정 행위를 금지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사고를 막기 것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안목의 경기부양 필요
2008년 당시 미국에서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받은 사람들의 대출액이 집값의 평균 90%를 넘어설 만큼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이 심각했다. 우리나라 역시 금융위기 이후 조성된 저금리 기조 속에서 가계 대출을 통한 주택 구매가 급증하고 이에 따라 집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이다. 지난 10년간 과거 정권들이 경기 부양 일환으로 추진한 건설업 중심 부동산 정책을 추진한 것도 가계 빚 폭증에 영향을 미쳤다. 금리상승 국면에 접어들게 된 지금 미국과 마찬가지로 가계부채가 폭발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매 시기 집권 정부는 당장의 민심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하기보다 근시안적인 경기부양,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정책 선택의 유혹에 빠진다”며 “지지율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극화 심화도 시급한 과제
금융위기 1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소득 양극화 지표인 처분가능소득의 5분위 배율은 올해 2분기 기준 5.23(수치가 클수록 불평등)으로 2008년(5.24)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든 ‘우리는 99%다’라는 구호 등이 재등장하며 사회적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장 백규선 변호사는 “일자리나 소득이 일정하게 유지되면 금융위기가 닥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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