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약속 끝에 그와 마주 앉았다. “그러고 보니 7월과 9월, 두 달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에게서 말줄임표가 앞에 길게 붙는 “……그렇죠……그렇네요” 라는 답이 불려 나왔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고 하니까 3㎏쯤 준 것 같다고 했다. 그새 그는 프로필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약력 한 줄을 추가한 상태였다. 정치라면 난 그런 거 몰라요, 하는 내 입에서 최고위원 그런 거 하면 좋아요? 라는 말이 튀어나갔다. 에이 뭐가 그렇게 좋겠어요, 라며 그는 쉴새없이 반짝대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말이지 눈 깜빡임처럼 불을 켜고 울려대는 메시지 알람이었다.
김민정(김)= “아기는 잘 크고 있나요?”(올 6월 박 최고위원의 딸이 태어났다.)
박주민(박)= “아기는 잘 크고 있어요.”
김= “무지 바쁘신 와중에 애기도 다 낳으시고…. 하기야 한국전쟁 때도 연애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들 살았지만요.”
박= “그 말씀들을 참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저희가 결혼식을 안 해서 결혼 몇 년 차라고는 정확히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동거까지 포함해서 한 13년? 14년? 그쯤만인 것 같아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안 생겼거든요. 포기하고 있는데 생겨가지고요.”
김= “아기 이름은요?”
박= “솔이요, 박솔. 이음, 들풀, 나무 이런 이름들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요, 제 짝꿍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거든요. 그런데 제왕절개는 하반신 마취만 한대요. 수술하는 동안에도 정신은 말짱하니까 그게 무서워서 계속 노래를 불렀는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그 부분을 자꾸 부르게 되더래요. 그래서 솔 하자, 솔로 했어요.”
김= “생각해 보니까 최고위원님 이름이 주민인 거예요. 73년생이면 소띠시고. 그래서 일을 많이 하시나(웃음).”
박= “어렸을 때부터 저는 제 이름을 좋아했어요. 부르기도 쉽고 사람들이 외우기도 쉽고 기둥 주(柱)에 백성 민(民인) 쓰는데 한자 뜻풀이도 마음에 들고요. 일복이 많다기보다는 제가 약간 일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있다 싶어요. 이왕이면 많이 하려고 보는 일종의 워커홀릭 이죠 뭐.”
김= “책 볼 시간이나 있으세요? 너무 피곤해 보이시네요. 눈을 너무 부비셔 가지고…”
박= “그래도 가방 속에 책을 꼭 넣어가지고는 다녀요. 근데 정말 읽을 시간이 없긴 하네요. 많이들 추천해 주세요. 제가 정치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책 필요할 것 같다면서 권해 주시는 분들이 많고요. 일주일에 평균 다섯 권은 꼭 책이 의원실로 오는 것 같은데요.”
김= “빤한 소리라지만 정치하는 사람으로 사는 데 있어 책이 확실히 도움이긴 하지요?”
박= “그럼요. 내가 해야 할 고민을 치밀하고 풍부하게 앞서 해주신 내용들인 거잖아요. 내 모자람은 다 책에서 채운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해요.”
김= “그러나저러나 어린 주민은 어떤 아이였을까요?”
박= “저는 유치원도 안 가고 남들 다 다니는 피아도 태권도 학원도 한번 안 다녀봤거든요. 제 이름 석 자도 못 쓰고 초등학교 입학했는데, 그 전날인가 엄마한테 1부터 10까지 숫자 그리는 방법 하나 배워서 들어갔는데, 뭐 만날 뛰어 놀기나 하고 그러니까 학교에 적응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 그러다 2학년 때 옆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때 제 짝꿍이 제 눈에 굉장히 예뻤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똑똑한 애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공부에 맛을 들인 것 같아요. 뭐든지 엄청 읽는 아이가 되어버린 거예요.”
김= “뭘 그렇게 읽는 아이였나요?”
박= “동네에 경로당 같은 시설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부설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어요. 수업 마치고 거길 매일 갔었어요. 책 보려고요. ‘서유기’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나고요. 그 무렵에 집에 있는 책들도 보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이 ‘너 책 읽어야 하니 너 읽을 책 사줄게’ 그런 분들이 아니셔서 왜 어른이 보는 ‘삼국지’ 있잖아요. 한 권이 이만큼 두껍고 일곱 권인가로 되어 있는, 굉장히 자세하고 길고 한자가 마구 병기되어 있는 그 ‘삼국지’를 세 번 반인가 봤어요.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그랬을 거예요. 그러다 어려운 말이 나오면 백과사전을 찾아 가면서 봤어요. 고모가 사 뒀던 100권짜리 세계문학전집이 있어서 그거 몇 번이고 읽은 기억이 나고요. 그중에서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솝 우화’ 이런 책들은 여러 번 읽었던 것 같아요. 재밌어서요.”
김= “참 많이도 읽는 아이였네요.”
박= “덕분에 한자를 일찌감치 되게 많이 알았던 것 같아요. 백과사전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거 들고 학교에 간 적도 많아요. 동아백과사전 그런 거 말고 어른들이 보시던 건데, 왜 낡은 구닥다리 사전이요. 그런 거 모르시나, 하여간에 엄청 두꺼웠던 사전인데 찾으면서 의도치 않은 것까지 알게 되는 재미가 엄청나서 계속 찾고 또 찾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백과사전이랑 놀 때도 있었으니까요. 잡다하게 읽었죠.”
김= “장래희망 같은 게 있었을 게 아니에요.”
박= “원래는 장사꾼이 꿈이었어요. 부모님한테 졸라서 장난감을 하나 받아내면 그걸 친구들에게 빌려줘요. 그리고 돈을 받아요. 아니 그러면 공짜로 빌려주나요(웃음)? 그 돈으로 또 장난감을 사요. 부모님이 놀라시는 거죠. 분명히 얘한테 사준 건 장난감 하나인데 왜 열 개가 되어 있지. 초등학교 때는 ‘과학도감’ 보는 걸 워낙에 좋아하고 그래서 과학자도 꿈꿨고요, 중학교 3학년 무렵인가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고 있었어요. 그거 보면서 생물학과나 의대를 가야겠다, 생각도 해봤고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왜 문과와 이과 중에 하나를 정하잖아요. 처음에 이과를 썼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세수를 딱 하는데, 집에 세면대가 없으니까 세숫대야에 물 받아서 세수를 딱 하는데, 마음 속 깊은 데서 갑자기 문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치민 거예요. 맥락도 없이 너무 분명하고 너무 강렬한 그 느낌이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에요.”
김= “대원외고 출신의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들었어요.”
박= “중학교 때부터 제가 성적과 등수에 너무 집중을 했어요. 집착이다 싶을 정도였죠. 그게 잘못된 길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그때는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할 만한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동네 고등학교를 갈 수도 있었죠. 그런데 뭔가 아주 잘한다는 애들 사이에서 겨뤄보고 싶다는 속내도 강렬했던 것 같아요. 또 웃긴 것이 제가 초등학교 때는 굉장히 덩치가 크고 싸움도 잘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중학교 가서는 공부만 하니까 몸이 많이 약해진 거예요. 와중에 초등학교 때 저한테 맞았던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시비를 걸어오는 거예요. 근처에 있다가는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이런 약간의 공포심도 있었고요(웃음). 전공은 중국어요. 저 어렸을 때 중국 영화가 큰 인기였거든요. 또 중국과의 교류가 점점 커질 거라는 분위기도 만들어지던 때이기도 했고요.”
김= “대원외고에서 받은 첫 등수 기억해요? 그전까지 늘 전교 1등이었다면서요.”
박= “97등인가 나오더라고요. 그런 등수 처음 받아봤죠. 부모님이 우리 형편에 과외도 안 된다 학원도 안 된다, 그러시니 선행학습이 다 된 친구들 따라잡으려고 엄청 지독하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늘 혼자 밥 먹고, 밥 먹으면서 단어장 펼쳐서 외우고, 수학여행 갈 때도 단어장 들고 가고. 대원외고에서 학원 안 가고 과외 안 받고 등수 올리려면 그렇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친구들이 다 놀랐다더라고요. 네가 정치를? 1등까지는 아니고 5등에서 7등쯤 한 것 같아요.”
김= “아… 친구가 하나도 없었구나…”
박= “가학적이다 싶을 만큼 죽어라 공부만 하는데 누가 있겠어요. 친구가 어떻게 있었겠어요. 제 고등학교 때 졸업 사진도 한 장이나 두 장 정도? 있나 모르겠네요. 거 참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라니까요(웃음). 비정상이었다는 걸 저도 그때 알고는 있었다고요.”
김= “그럼 대체 무엇이 의원님에게 친구를 만들어준 걸까요.”
박= “법대에 입학하고 났는데 갑자기 대학이라는 넓은 공간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거예요. 사람하고 대화하고 사람에게 공감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니 내 마음에 여러 감정이 치밀더라고요. 공부하려고 감정을 많이 억누르는 데 집중을 했었거든요. 그게 되냐고요? 되고말고요. 그런데 그 뚜껑이 없어지니까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사람들하고 있을 때의 어색함을 견디기 힘들다는 감정이 일어나면서 안 되겠다, 사람을 배우는 데 집중을 해야겠다, 그걸 그런 걸 잘 배우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수는 있겠다, 그런 마음이 먹어지더라고요.”
김= “법대를 선택한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셨나요?”
박= “아뇨. 고3 때 제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하다가 오히려 병이 난 거예요. 아파서 입시 때 2교시부터 시험을 거의 못 봤어요. 그래서 재수를 했는데 경영학과를 가기에 점수가 너무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법대로 갔죠.”
김= “세상에나 점수가 남을 수도 있구나…”
박= “합격하고 나서 입학하기 전에 시간이 좀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 경험으로 선행 학습이 필요하겠구나, 법 관련한 책을 좀 읽어야겠다, 무턱대고 교보문고라는 데를 처음 가보게 된 거예요. 그전까지 어딜 나가본 적이 없어요. 재수할 때도 종로학원에 등록은 해놨지만 3분의 1도 안 나갔어요.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게 더 피곤하더라고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법을 몰랐던 거죠. 소극적이고 움츠러드는 생활을 했던 사람이니 어땠겠어요.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도 싫고 낯설기만 하니까 얼른 사서 집으로 가야지 싶어 하나는 제목에 법이 들어 간 책과 하나는 심리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 두 권을 사서 나온 거예요. 그게 ‘변증법적 유물론’ ‘프로이트 심리학 입문’이었어요.”
김= “책을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거군요.”
박= “그 두 권이 제 머릿속을 아주 맑게 해주더라고요. 뭔가 내가 모르는 넓고 큰 영역이 있구나,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어쨌든 지금보다 좀 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거나 그 덕에 다시 독서하는 모드를 만들게 된 거죠.”
김= “그때부터 어떤 책들을 읽기 시작한 건가요?”
박= “주로 사회과학 쪽이나 철학책들, 경제에 관련한 책들이요. 그리고 뭔가 제 자신을 닦을 수 있는 수신서 같은 책들이랄까. 뭔가 저를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든가 ‘사람아 아, 사람아’ 같은 책들은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고민하게 만들잖아요. 특히 신영복 선생님을 제가 너무 좋아해서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열 번도 더 읽은 것 같아요. 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이라든가 ‘공산당 선언’ 같은 철학책들도 열심히 읽었고요, 운동권들이 도서관 잘 안 가는데 저는 아침에 학교에 가면 무조건 2시간은 도서관에서 책 읽었어요. 일주일에 한 권 정도는 꼬박꼬박 읽었던 것 같아요.”
김= “이러니 대학 시절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박= “예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들려면 많은 경험밖에는 답이 없다, 결론을 그렇게 내렸던 것 같아요. 당시 많은 경험을 제공해주는 데는 운동권밖에 없었거든요(웃음). 철거촌이라든지 공장이라든지 농장이라든지 집회마다 많이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어디를 가든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버티는 것, 그 점을 중시했고요. 처음에는 자주 황당해하고 그랬어요. 지금 내가 여기 와서 뭐하고 있나 이런 마음이 자주 드는 거예요. 얼마 안 있어도 엄청 피곤하고 그랬었죠. 그럴 때마다 같이 온 선배들에게 물었어요. 그때마다 선배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와 있다고 하는데 그게 잘 와 닿지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일단은 좀 가보자 하는 뚝심으로 버텼는데 2학년 여름이었을 거예요. 엄청나게 더운 여름이었는데, 그때 원진레이온 집회에 따라 나가서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는데, 연단 위에서 누군가 하는 말이 처음으로 내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노동자분들 가운데 한 분이셨을 거예요. 어쨌거나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선배들하고 토론하고 책 꾸준하게 읽고 공부 모임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다 들리더니 이해가 되고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계단처럼 올라가다가 땅이 된 거죠. 그 뒤로는 힘든 거 모르고 집회든 현장이든 나갔던 것 같아요.”
김= “그렇게 해서 몸에 다른 피가 돌기 시작한 거군요.”
박=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물론을 열심히 공부하면 나와 상관없는 아프리카에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도 마음이 아프다고요. 설마 그랬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사람 사이에 저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내 일처럼 아프더라고요.”
김= “아까부터 저는 의원님의 첫 연애가 어땠을까 그게 참 궁금했거든요. 사람 공부를 스무 살 넘어서부터 하였다고 하니 말이지요. 예컨대 사랑이요.”
박= “첫 연애는 대학교 3학년 때 했고요, 그전에 1학년 때부터 짝사랑했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워낙에 제가 미숙하다 보니까 지금도 그 친구에게 미안해요. 요즘 말로 스토킹이었을 거야. 만날 쫓아다니고 표현을 하긴 하는데 거칠었죠.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한 고려가 없었으니까. 그걸 모르니까. 휴대폰도 없을 때니까 아주 밤늦은 시간에 그 친구 집으로 전화해서 그 친구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하고 여하간 좌충우돌 그랬어요. 그 무렵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도서관에서 읽고 제가 펑펑 울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봤던 기억이 있어요. 저와 비견이 좀 되었겠죠. 두 번째로 좋아지게 된 분과 연애를 처음 하게 되었는데 그땐 연애 관련 책들도 좀 찾아 보고 그랬어요. 슬픈 책들 많이 읽었죠(웃음). 그러면서 상대방을 어떻게 배려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도 같아요.”
김= “일찌감치 정치인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잖아요. 변호사는 되었고요.”
박= “원래는 사회운동을 하려고 했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 그게 꿈이었죠. 군대 가기 전전날 아버지가 제 방에 오랜만에 들어오셨는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법서가 한 권도 없어가지고요. 법 공부를 아예 안 했거든요. 그러다 4학년 때였어요. 신도림동에 있는 작은 철거촌에서 도와달라 그래서 동기들이랑 거기 방 하나 잡아서 먹고 자면서 애들 숙제도 도와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지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철거민들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게 꿈이세요. 그 결정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구청장인데 어떻게 약속이 된 거예요. 겨울에 면담하러 갔는데 약속과 달리 못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에이, 놀랄 일 아니에요. 그런 일 잦아요. 막상 가보면 일정이 바뀌었다 바쁘다 어쨌다 하면서요. 그래서 초등학교 애들 손잡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차장에서 내내 기다렸어요. 그날 또 눈이 엄청 왔네. 눈 펑펑 맞고 기다리다 돌아가면서 처음으로 변호사 자격증이 있었으면 구청장과 만나게는 해 줬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사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죠.”
김= “손으로 써서 하는 일이 주된 거라 그런지, 지금 보니까 쓰기의 도구가 많아요. 필기구가 다양하게 꽂혀 있네요.”
박= “저는 반복적으로 적는 습관이 있어요. 기억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필기구를 선호하는 이유는 뭔가의 생각을 종이에 끼적거릴 때 아이디어도 나오고 해서요. 제가 말하는 좋은 필기구라는 건 손에 익고 썼을 때 저한테 좋은 느낌을 주는 거예요. 그걸 찾으면 오래 써요. 세월호 참사 때 가족분들 옆에 2년 가까이 있는 때는 무조건 연필로만 썼어요. 생각을 하고 생각을 쓰고 생각을 지우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 많을 수밖에 없던 때여서 그랬던 것도 같고요.”
김= “책은 보통 어떤 식으로 보시는 편인가요?”
박= “밑줄 긋고 메모하고 좋아하는 내용이 있으면 필사해요.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이 들면 제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합니다. 제가 다시 제 글로 풀어보는 거죠. 남의 이야기를 풀어서 정리해서 남에게 전달을 하는 게 변호사라는 직업이기도 한 거잖아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으면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책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책을 이해를 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김= “요즘엔 무슨 책 읽으세요?”
박= “경제와 관련한 책들을 많이 봅니다. 장하성 실장님이 쓰신 책은 거의 다 봤죠. ‘왜 분노해야 하는가’ 봤고요, 장 실장님을 저격하는 정승일 교수님의 책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는 지금 보고 있고요.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도 읽고 있어요.”
김= “법의 이해를 돕는 책이랄까요, 법 관련 책은 혹 쓰실 의향이 없으실까요. 쓰시면 참 우리 보기 좋을 것 같다 싶어서요.”
박= “헌법 책은 지금 하나 쓰고 있어요.”
김= “이런 질문 좀 거시기 하지만, 정치를 해 보시니까 정치요… 뭔 것 같으신지요.”
박= “모험적이고 험한 일이죠. 그게 딱 정치죠.”
김= “마지막으로요, 가장 자주 쓰는 말이 뭘까 혹시 의식해보신 적 있으세요?”
박= “글쎄요. 합리? 이렇게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이게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그런 것 같은데요.”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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