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정부 심지어 연방준비제도(연준)까지 금융 규제를 10년 전으로 다시 돌려놓으면서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미 뉴욕타임스)
“의회는 글로벌 금융 위기를 잊었다.”(미 블룸버그)
“미국이 이 같은 경로를 이어가면 (글로벌 금융위기) 역사가 반복돼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영 가디언)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미 상원이 금융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경제성장ㆍ규제완화ㆍ소비자보호법’(이하 금융규제완화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이 법은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정부가 탄생시킨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과 소비자보호법’(이하 도드-프랭크법)의 ‘트럼프표 개정판’이다.
도드-프랭크법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80여년 만에 금융정책의 무게추를 ‘규제 완화’에서 ‘강화’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는 광범위한 금융개혁법안이다. ▦금융감독기구 신설 및 개편 ▦중요 금융기관의 건전성 기준 강화 ▦은행의 자기자본 활용한 위험투자 제한(볼커룰) 등이 핵심이다.
◇오바마표 금융개혁법 무장 해제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10년 만에 도드-프랭크법이 개정되며 금융개혁의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아가게 됐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월가의 ‘탈규제’ 요구 목소리가 커졌고, 월가 거물들이 백악관까지 장악한 게 이러한 변화의 배경이다. 그러나 미 당국과 의회가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적인 규제 조항까지 무력화할 경우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규제완화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연준으로부터 보다 강화된 규제를 적용 받는 대형은행의 자산 기준을 5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로 올린 부분이다. 기존 도드-프랭크법에 따르면 자산이 500억달러를 넘는 대형은행은 매년 정기적으로 재무 건전성 평가(스트레스 테스트)를 강제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형은행의 자산 기준이 뛰면서 규제 대상이 되는 은행은 38개에서 12개로 줄었다. 가디언은 “사실상 대부분의 은행들이 (스트레스 테스트) 면제를 받는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재도래할 위험을 높인 결과”라고 비판했다.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으로 꼽혔던 볼커룰도 개정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볼커룰은 은행의 자기자본거래와 헤지ㆍ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와 운용을 금지하는 규제다. 그러나 금융규제완화법에는 자산이 100억달러 미만이고 거래 자산이나 부채가 전체 자산의 5% 미만인 은행은 볼커룰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역은행의 규제 부담을 경감해 주자는 취지다. 볼커룰 면제는 금융업계의 숙원 중 하나였다. 규제 체계가 워낙 복잡한데다, 은행의 시중 유동성 공급조차 제약해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볼커룰이 은행산업의 건전성과 안전성을 제고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업계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셈이다.
◇금융기관 출신이 감독기관 장악
금융규제완화법보다 더 포괄적으로 규제 빗장을 푸는 ‘금융선택법’이 다시 의회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하원까지 통과한 금융선택법은 도드-프랭크법에 포함된 16개장 중 12개를 폐지하거나 부분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볼커룰은 전면 폐지된다. 이 법안은 급격한 규제완화를 우려한 민주당의 반대로 그 동안 상원 통과가 무산됐지만, 공화당을 중심으로 일부 내용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정신동 경남도 금융정책자문관은 “11월 중간선거 이후 상원 구성이 바뀌면 금융선택법안이 다시 추진될 수도 있다”며 “특히 공화당은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인 볼커룰을 전면 폐지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 제ㆍ개정을 통한 사전적 규제 완화뿐 아니라 사후 감독을 수행할 감독기구들의 수장이 속속 교체되고 있다는 점도 불안한 대목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금융기관 출신이 주요 감독기관의 수장으로 속속 임명됐다“며 “이들이 현행 법 체계에서 자체적으로 감독규정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통화감독청장으로 취임한 조셉 오팅(전 원웨스트은행장), 올 5월 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으로 임명된 공화당 출신의 제레나 맥윌리엄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글로벌금융위기 원인 중 하나가 부실 감독”이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일부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반칙에는 옐로ㆍ레드카드를 과감하게 쓰는 사후 감독 규정은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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