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매년 1,500만명 이상이 찾는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볼거리를 찾는 단순한 관광을 뛰어넘어 아예 삶의 거처를 옮기려는 이들이 이어지면서 ‘제주에서 한 달 살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갔던 곳을 다시 찾는 재방문 비율 또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가 그리 넓은 땅이 아니기에 예전에는 한두 번 방문하면 모든 것을 다 본 것이 아니냐는 의식이 강했다. 그럼에도 최근 10여년 사이에 다시 찾는 이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광 트렌드의 변화다. 예전의 경우 명승지 위주의 관광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휴식과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이 여행의 목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에도 생명이 있다. 흔히들 관광지 수명주기라 부르는데, 자원 단독기에서 시작해 관광기반 정비기, 관광시설 정비기, 관광지 발전기, 안정기를 거쳐 쇠퇴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줄곧 인기 관광지로 남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또 트렌드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거나 스토리텔링을 통한 신규 이미지 창출로 새롭게 각광받는 경우도 있다.
관광지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 안덕계곡이다. 안덕계곡은 창고천의 중간 지점인 서귀포 안덕면 감산리 일대를 이르는데, 창고천의 옛 이름이 감산천임을 감안하면 이 하천의 중심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계곡의 깊은 맛과 함께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조선시대에는 제주도 최고의 명승으로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1577년 제주를 찾은 임제가 남긴 ‘남명소승’에는 굴산을 지나 산방산으로 향하는 과정에 감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도 감산천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감산천 : 대정현 동쪽 25리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 감산리에 귀양살이한 이로는 임징하와 신명규가 있고, 옛 감산지경에는 신임, 권진응, 임관주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임관주의 경우 창고천을 찾아 마애명을 남긴 것으로 볼 때 당시는 즐겨 찾는 명소가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 있다.
1937년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조사했던 일본인 이즈미 세이이치(泉靖一)의 제주도 책자에는 ‘계곡의 용천지대와 해녀의 물맞이’라는 사진이 실려 있다. 자세히 보면 안덕계곡 일대가 아닌가 여겨진다. 물이 풍부해 당시에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비슷한 시기에 한라산과 제주도를 둘러본 후 기행문을 남긴 이은상의 ‘탐라기행’에서도 안덕계곡이 언급된다. ‘감산천의 계곡미’라는 제목의 글에서 감산천은 그 시작이 한라산이라 하나 하상이 커지고 물이 흐르기는 가악동을 지나면서부터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지도에는 창고천이라 표기되고 민간에서는 안덕천이라 하는데, 한라산에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으로는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은상은 직접 계곡으로 내려가 경치를 감상하기도 했다. 하천변의 식생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수많은 골짜기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지금의 안덕계곡 탐방로를 따라 걸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해방 이후 안덕계곡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상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제주도 일주 위주의 거의 모든 수학여행에서 단골 코스였고, 1990년대 중반까지도 도내 대표적인 관광지로 각광 받아 1995년 입장객이 3만8,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입장객이 6,000명으로 줄었고, 입장료를 폐지한 2001년부터는 아예 통계조차 잡지 않고 있다. 수질오염과 암벽 균열로 인한 낙석 위험으로 출입이 통제되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후 오염 상태가 심각했던 안덕계곡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방자치체와 지역주민의 정화노력으로 점차 깨끗해졌다. 2012년 8월엔 암반 균열 및 낙석 위험에 대한 보강공사를 완료해 통행금지도 해제되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안덕계곡이 MBC 드라마 '구가의 서' 촬영지로 온ㆍ오프라인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이곳을 찾는 도민과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경관이 뛰어나고 유명한 관광지라 하더라도 환경이 훼손되면 금세 외면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운 사례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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