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한국 현대사 일대 전환
쿠데타 성공후 강력한 산업화 정책
농업서 중공업 중심 산업구조 재편
짧은 시간에 고도 경제성장 이뤄내
이 기획에서 나는 앞서 백범 김구의 삶과 사상을 살펴봤다. 이제 이어 두 정치가를 잇달아 다루려고 한다. 박정희와 노무현이 그들이다.
박정희와 노무현을 주목하는 까닭은 그들의 시대정신(Zeitgeist)에 있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두 시대정신은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우리 사회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는 ‘나라 만들기’였다. 이 나라 만들기의 일차적인 목표는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였다. 박정희가 산업화의 상징이었다면, 노무현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광복 이후 우리 현대사를 다루는 인문·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그동안 학술 토론을 비롯해 개인 회고, 정치 비사, 소설화 또는 영화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조명돼왔다. 박정희 개인에 대한 평가 역시 ‘민족의 영웅’에서 ‘독재의 원조’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이뤄져왔다. 이러한 풍경은 ‘개인적 존재’로서의 박정희는 1979년에 사망했으나 ‘역사적 존재’로서의 박정희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조국 근대화의 시대정신
박정희는 1917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교사의 길을 걸은 다음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군인이 됐다. 광복 후 그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해 다시 군인이 됐고, 1961년 5ㆍ16쿠데타를 감행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등장했다.
박정희를 위시한 쿠데타 주역들은 5ㆍ16을 ‘군사혁명’이라 불렀다. 하지만 지배계급 내의 일부 세력이 무력 등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기습적으로 탈취하는 정치활동이 쿠데타라면, 5ㆍ16은 명백히 쿠데타다. 문제는 쿠데타가 낳은 결과였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강력한 국가 주도 산업화를 추진했다.
박정희 시대는 우리나라 모더니티에서 일대 전환기였다. 구체적으로 1960년에 64퍼센트였던 농ㆍ어민이 1980년에는 31퍼센트로 감소했다. 또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에는 2차 산업이 1차 산업을 능가했고 중공업이 경공업의 비중을 추월하는 서구형 산업구조를 갖췄다.
생활수준 및 양식 역시 크게 변화했다. 1961년 8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979년에는 1,597달러로 증가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더불어, 아파트ㆍ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도시적 생활양식이 보급됐고, 할리우드ㆍ팝뮤직으로 대표되는 미국식 대중문화가 유행했다.
박정희식 발전 모델의 暗
유신체제 독재ㆍ정경유착 구축 등
민주주의 파괴 반인권 시대 증거
경제와 민주주의 결합 노력 안해
박정희가 남긴 글들은 2017년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편집해 도서출판 기파랑에서 ‘박정희 전집’으로 출간됐다. 이 가운데 내가 주목하려는 책은 ‘국가와 혁명과 나’다. 이 저작은 1963년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초고를 박상길이 정리한 것이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직전에 쓰인 만큼 그의 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5ㆍ16쿠데타를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 혁명은 정신적으로 주체의식의 확립혁명이며, 사회적으로 근대화혁명이요, 경제적으로는 산업혁명인 동시에, 민족의 중흥 창업혁명이며, 국가의 재건혁명이자 인간개조, 즉 국민 개혁혁명인 것이다.”
이러한 혁명 이념의 연장선상에 조국 근대화 전략이 놓여 있었다. 박정희는 가난이 자신의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말한다. 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자립경제를 위한 산업화를 강조한다. 자립경제 건설은 “혁명을 통한 민족국가의 일대 개혁과 중흥 창업의 성패 여부를 판가름하는 문제의 전부이며, 그 관건”임을 주장한다. 자립경제에 대한 그의 열망은 19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는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주목할 것은 이 책에서 박정희가 자신의 이념의 하나로 민족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이다. 그는 쑨원의 중국, 메이지유신의 일본, 케말 파샤의 터키,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집트 등의 민족주의를 주목하고 비교한다. ‘퇴폐한 민족 도의와 국민 정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한다’는 5ㆍ16쿠데타의 공약은 박정희가 지향한 민족주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제시된 조국 근대화의 열망은 가파른 경제성장을 낳았지만, 유신체제의 등장과 함께 그 정치적 정당성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1978년 10대 총선에서 야당 신민당이 전체 득표율에서 여당 공화당에 1.1퍼센트 앞선 것은 대표적인 증거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에 의해 돌연 이승을 떠났다.
박정희 시대의 명암
박정희 시대는 흔히 ‘발전국가’ 또는 ‘개발독재’ 시기로 불린다. 개발독재란 경제적 개발과 정치적 독재가 결합돼 있는 체제를 말한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개발독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발전사회학의 관점에서 개발독재의 핵심적 쟁점은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권위주의 간 관계의 문제다. 이는 권위주의가 경제성장에 효율적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개발독재를 선택해야 하는가,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이 인권과 정치적 자유보다 중요한 것인가의 질문이다.
1960년대 당대의 시선에서 보면 박정희식 발전 모델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사회 안정에 대한 희망을, 보릿고개의 암울한 현실은 경제성장에 대한 열망을 낳았다. 이러한 희망과 열망은 위로부터의 국가적 동원을 통한 산업화에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지나간 시대의 이념 ‘박정희주의’
경제성장 위해 민주주의 유보 개념
성장만능ㆍ안보우선 ‘보수 가치’로
박근혜 탄핵과 함께 사실상 종언
문제는 경제성장에 성공했다고 해서 박정희식 발전 모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식 발전 모델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데 과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있다. 1969년 3선 개헌에서 1972년 10월 유신에 이르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특히 유신체제의 암울한 독재는 박정희 시대가 얼마나 비민주적이었고 반인권적이었는지를 여실히 증거했다.
요컨대, 박정희 시대는 모더니티의 명암이 뚜렷한 시대였다. 경제성장을 통해 우리 사회를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변화시킨 산업화 시대였지만, 동시에 정경유착이 이뤄지고 인권탄압이 가해진 권위주의 시대였다.
박정희 자신 또한 그 명암이 분명한 정치가였다. 그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고, 민주주의를 훼손했고, 1인 지배의 유신체제를 만든 독재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본격적인 산업화를 모색했고,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했고, 의료보험을 포함한 복지국가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였다. 이러한 두 얼굴을 가진 박정희였기에 어떤 이들은 그와 그의 시대를 열렬히 옹호해온 반면 다른 이들은 완강히 부정해왔다.
보수의 현재와 미래
박정희와 그의 시대는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보수 세력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기획에서 앞서 박세일을 다뤘을 때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보수를 지탱하던 핵심 이념은 이른바 ‘박정희주의’였다.
박정희주의는 경제성장이란 목표를 위해선 인권을 포함한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을 이뤘다. 결과를 위해선 과정은 무시해도 좋다는 성장만능주의가 ‘시장 보수’로 거듭났다면, 국가를 위해선 인권은 무시해도 좋다는 반공권위주의가 ‘안보 보수’로 나타났다. 박정희주의의 두 적자(嫡子)인 안보 보수와 시장 보수의 전략적 공존이 우리 사회 보수가 가진 힘의 원천이었다.
이 박정희주의는 이제 역사적 종언을 고하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공익과 사익을 구별하지 않는 약탈적 경제 운영에 대한 거부,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두려움의 동원을 핵심으로 하는 권위적 통치 방식에 대한 거부,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사회ㆍ문화에 대한 거부는 박정희주의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박정희주의는 지나간 시대의 보수적 가치일 뿐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우리 사회 보수 세력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선 박정희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철학을 일궈야 한다. 이를 위해 보수는 고전적인 디즈레일리의 ‘한 국민 국가’에서 최근 캐머런의 ‘따듯한 자본주의’와 메르켈의 ‘탈이념적 포용주의’까지의 서구 보수로부터 비전 및 정책을 배워야 한다. 21세기 정보혁명 시대에 걸맞게 공동체ㆍ사회통합ㆍ점진주의와 같은 보수 본래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정립하는 것은 보수의 현재와 미래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노무현의 ‘진보의 미래’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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