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씨 말라 호가 상승 이어져
10억 미만 찾는 실수요자 몰려
서울 접경 광명ㆍ과천도 과열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기름 부어
“도심과 가격 키 맞추기” 분석
“그게 7억5,000만원에 나갔다고? 불이 번진 게 아니라 아주 활활 타네.”
토요일인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A 부동산 중개사무소 대표는 주변에서 영업 중인 중개사 동료들과 연달아 통화한 뒤 찜찜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지난 7월까지 5억7,500만~6억원에 거래됐던 상계역 인근의 한 브랜드 아파트(전용면적 107㎡)가 이날 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들은 것이다. A사무소 대표가 못내 아쉬워한 이유는 지난주 후반 해당 매물이 인터넷에 올라온 뒤 자신의 사무실에 매수 희망자 6명의 연락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파트 구조도 묻지 않고 계좌번호를 부르는 투자자부터 꼭 이사하고 싶다고 읍소하는 아기 아빠까지, 서로 이 아파트를 사겠다고 경쟁하더니 결국 1억5,000만원이나 더 오른 가격에 다른 사무소에서 거래가 성사됐다”며 “한 달 새 이 동네 아파트들은 최소 5,000만원은 더 올랐고, 그마저도 나오자마자 바로 팔리고 있다”며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강북구 월계동 창문여고 인근의 B 부동산 중개사무소에도 “매물 있냐”는 문의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 왔다. “물건이 딱 하나 있긴 한데 ○○아파트 1층이고 43평에 4억5,300만원”이라며 마지못한 듯 입을 뗀 B사무소 실장은 “(가격대가 현저히 낮은 걸)딱 봐도 알겠지만 사고 매물이라 집주인이 집과 관련해 정리할 일이 많아 솔직히 추천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동네 어떤 사무실에 전화해도 매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창문여고와 북서울꿈의숲 주변 중개사무소 4곳에선 평수를 가릴 것 없이 매물이 씨가 마른 상태였다. 한 사무소 실장 얘기가 6억원에 못 미치던 인근 대단지 아파트(95㎡) 매물이 2주 전 6억6,000만원에 계약된 게 마지막 거래였다고 한다. 7억원을 부르며 지난주 나왔던 같은 평수의 매물은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음에도 집주인이 다음날 “더 오를 수 있다는데 다음에 이야기하자”며 황급히 물건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노원구, 강북구 등 서울의 대표적 베드타운이자 한때 ‘갭투자의 성지’로 통하던 서울 외곽 및 경계 지역이 집값 상승의 광풍에 휩싸였다. 수락산, 도봉산 등과 맞닿은 서울의 가장 외곽인 노원과 성북은 강남 및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 집값이 급등할 때도, 인접한 동대문구(청량리)가 개발 호재로 호황을 누릴 때도, 매주 0.05% 안팎의 집값 상승률을 이어가며 시내에서 꼴찌를 다투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9일 KB부동산의 주간 주택시장 동향(3일 기준)에 따르면 강북구는 서울 시내에서 아파트값 상승률 1위(1.55%)를 기록했으며 노원구 역시 1.10%(8위)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강북지부 관계자는 “도심의 아파트값 대부분이 지난달 15억선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10억원 미만의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이 대거 외곽 지역으로 몰렸다”며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의 강북 개발 계획 중 동북선 경전철이 지나가는 지역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물 실종과 호가 상승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접경 지역인 경기 광명시와 과천시의 부동산 시장도 과열될 대로 과열됐다. 특히 광명은 지난달 정부의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후 투자자 관심이 더욱 집중돼 매매가가 급등하는 ‘역효과’까지 발생했다. 급기야 지난주엔 전국에서 아파트값 상승률(1.58%)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등극했다. 철산주공 10단지 인근의 C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입주 10년 차인 브랜드 아파트(166㎡)가 지난 달 12억원에 거래됐는데 투기과열지구 지정 후엔 15억원에 매물이 나왔다”며 “집값 상승을 견제하려던 당국 의도와 달리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그만큼 뜨거운 지역’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져 집주인들의 기대감만 더 커졌다”고 말했다. 과천의 경우 시장에서 “추석 전 신규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나온 뒤 땅 매입 문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규 택지가 조성될 유력 지역으로 알려진 과천동의 S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과천 땅값은 이미 평당 200만~500만원으로 오를 만큼 올랐는데도 최근 ‘1,000만~1,500만원대에 살 의향이 있다’는 전화가 오고 있다”며 “제 아무리 높은 값을 불러도 매물이 없어 거래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서울 중심지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지난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외곽과 수도권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지역별 편차는 있지만 외곽과 경계도 서울 도심과 ‘가격 키 맞추기’가 전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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