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에
거시지표 악화ㆍ매수 불안 심리 등
다양한 요소 동시다발적 표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토로
“이미 풀린 자금 거두긴 어려워
도심 공급 확대에 방점 찍어야”
투기지역 초강경 억제책 제시도
2주 전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를 8억원에 사기로 하고 계약서를 쓴 박모(35)씨는 지난 주말 부동산중개업자에게서 집주인이 계약을 깰 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근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뛰면서 매도인이 계약금(8,000만원)의 2배를 주고라도 계약을 물리고 싶어 한다는 것. 박씨는 당초 일정보다 서둘러 중도금을 보내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돈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매수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매물이 나오면 곧바로 집도 보지 않은 채 계약금을 보내거나 계약서를 쓰기 위해 만나면 다시 수천만원을 올리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현 부동산 시장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재야 고수들도 분석과 집값 전망을 포기할 정도다. 추석 전 추가 부동산 대책 발표를 예고한 정부도 부처 안팎의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데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으로 정책의 목표와 수위를 구성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10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이번주 집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추가 대책이 발표된다. 당초 주초 발표를 준비했던 정부는 과천 등 정부 신규 택지 공급 예정지에 대한 정보가 사전 유출되면서 막판 변수가 생겼다. 국토부는 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여부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그린벨트 해제 문제와 관련해선 서울시와 입장 차이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 주에는 꼭 발표를 할 것”이라면서도 “시장 상황이 워낙 유동적이어서 어느 수준으로 정책을 풀어낼지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현 시장의 난해함에 동의했다. 강영훈 부동산 스터디 대표, 김종율 보보스 부동산연구소 대표, 김민규 파인드아파트 대표 등은 이날 집값에 대해 묻자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 급등세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거시 경제 지표 악화, 매수 대기자의 불안 심리 등 다양한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된 것이어서 집값 전망이 무의미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45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카페 ‘붇옹산의 부동산 스터디’를 운영하는 강 대표는 장기적인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상황인데 시장엔 매물이 없다”며 “집값이 어떻게 변할지는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2만 부 이상 팔린 ‘돈이 없을수록 서울의 아파트를 사라’의 저자 김민규 대표도 “강남과의 키 맞추기 차원에서 강북 신축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강남이 다시 달아나면서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며 “더 이상 유동성 과잉이나 수급 불균형을 이유로 현 상황을 설명할 순 없다”고 말했다.
고수들은 정부를 향해 도심 공급 확대 쪽으로 정책의 방점을 찍을 것을 조언했다. 김종율 대표는 “집값이 잡혔던 시기는 국토균형발전을 추구한 노무현 전 대통령 때가 아니라 경제 논리로 부동산을 바라 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서울에 공급을 확 늘렸을 때”라며 “이미 풀려버린 자금을 거둬들이기 어려운 이상 결국 이명박 정부 때처럼 공급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은석 북극성부동산재테크 대표도 “서울에 거주를 희망하는데 ‘수도권에 공급을 할 테니 그쪽으로 이동하라’고 한다면 결국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며 “수요가 있는 도심의 재건축을 완화하고 임대ㆍ소형주택 의무 공급도 크게 확대하면 공급불안 우려로 인한 수요 집중 현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그린벨트를 푸는 서울 주변지 택지공급보다는 재개발 지역의 추가 구획 지정과 관련 규제를 완화해 사업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토지거래 허가제’ 등 초강경 수요억제책을 꺼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본적으로 과도한 정부의 정책개입에 반대해온 강 대표는 “물리적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 역사상 이렇게 많이 강남에 새 아파트가 공급된 적은 없었다”며 “다만 재고 주택이 시장에 돌게끔 해야 하는데 다주택자들이 세금을 감수하며 붙들고 있다 보니 시장에 매물이 안 나온다. 그렇다고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풀면 다시 매입이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결국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투기지역 토지거래 허가제’ 같은 강력한 수요억제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투기지역에서 실제로 들어가 살 사람만 매수할 수 있게 토지거래허가제를 시행하면 다주택자가 주택을 살 수 없게 된다. 물론 실수요자도 일부 피해를 보겠지만 현 부동산 폭등세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유동성을 더 축소하고 수요를 줄이는 정도 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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