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사 윤모(32)씨는 며칠 전 한 학생이 교실에서 부르는 노래 후렴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분명 경쾌한 멜로디였지만 ‘대가리 박고 자살하자’라는 끔찍한 말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대박자송’이라는 원곡을 직접 들어보니 ‘밥만 먹는 식충’ 등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 표현까지 들어가 있었다. 윤씨는 “학생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타이르고 있지만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접할 수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 사이에 자살ㆍ자해를 언급하는 대중가요가 번지고 있다. 지난해 등장해 인기를 끈 ‘대박자송’ 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쇠창살을 욕했던 그들은 그들 스스로 목줄에 목을 맸어’(자살ㆍ에이체스)라며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거나, ‘내 팔 XX이 몇 줄인지와 그어버린 배경에 대해’(필요도ㆍ빈첸) 처럼 자해를 암시하는 노래도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퍼지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런 가사만 따로 떼어 내 메신저로 보낸 뒤 반응을 떠보는 일명 ‘가사 프랭크’ 놀이나 자해 인증사진 게시까지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지난 6월 자살 및 자해 언급가요 45곡을 선정해 관련 부처에 유통금지 협조 요청을 보냈다. 청소년들이 계속 노래에 노출되면 자칫 극단적 생각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이중 29곡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고 17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다.
정부의 조치는 그러나 수 많은 채널 중 한 곳을 겨우 차단한 수준이다. 현행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멍’이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해매체물로 지정이 되면 국내 음원사이트에서는 성인인증 없이 해당 가요를 들을 수 없지만, 유튜브ㆍ인스타그램 등 해외 사이트의 경우 운영자의 협조를 받아야만 성인인증 대상으로 지정이 되며 이를 정부가 강제할 수도 없다.
다행히 해외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차단 요청을 받아들인다 해도 빈틈은 남아있다. 개인이 노래의 일부만 편집해 올리거나 따라 부른 영상은 삭제를 강제하기 어렵다. 자살관련 정보는 유해정보이긴 하지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불법정보’인 음란물과는 달리 게시자 처벌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지난 7월 자살유해정보 1만7,338건(영상ㆍ사진은 8,039건)을 발견했지만 이중 약 35%만 삭제하는데 그친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버티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최근 국회에서도 자살유해정보 유통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청소년들을 보호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ㆍ서영교 의원은 각각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음란ㆍ폭력 정보와 마찬가지로 자살유발정보 유통 또한 법으로 금지하고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심의ㆍ제재 기준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현주 한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주로 접하는 자살유해정보는 더 이상 ‘블로그상 동반자 모집 글’이 아니라 ‘유튜브 속 대중가요’인데 현행법은 전자만 쫓고 있는 상황”이라며 “심적으로 취약한 학생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는 만큼 현실에 뒤쳐진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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