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그는 책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이였다. 평생 안 물리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으니 누가 부럽고 뭐가 무서우랴. 그저 나는 그가 부럽고 다만 나는 그가 무서울 뿐이었다.
김민정(민정)= “저서 ‘책 잘 읽는 방법’ 읽었어요. 잘 나가지요?”
김봉진(봉진)=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긴 했더라고요. 책은 재밌으셨어요? 되게 쉽죠?”
민정= “읽기 쉬운 책이 쓰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알기도 알아서요.”
봉진= “와우! 그렇게 얘기를 해주시니까 좋네요. 처음에는 되게 웅장하게 썼어요. 그런데 내가 봐도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 날리고 새로 썼어요. 사실 독서법에 관한 책들은 많잖아요. 저도 그런 책을 보면서 공부했고요. 대신 타깃을 새로 잡은 거죠. 처음 독서를 해보려는 친구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자꾸 못 읽게 되는 친구들에게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깨고 편히 여기라고요. 왜 영어 공부법을 다룬 책이 다 비슷비슷한 것처럼 기존의 독서법 책과 많이 다르지는 않고요, 약간 말투를 바꿔보고 싶다? 그런 정도에서 시작했어요.”
민정= “책인데 귀에 잘 들리더라고요. ‘해가 지날수록 더욱 좋아지고 존경하게 되는 보미 씨에게’라고 시작하는데 아내분 말씀인 거지요?”
봉진= “허허허허허. 최고의 미인이십니다. 저랑 같이 디자인했던 사람이고, 지금은 평범하게 아이들 키우면서 살고 있지요. 수제 가구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원래 실내디자인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가구랑 사진을 했었는데 그 시장을 잘 몰랐던 거죠. 사람들이 예쁘다 그러면서 사진만 찍어가고 사지는 않더라고요. 생활이 어려워져서 둘 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와이프가 그 당시에 김미경 원장님 책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를 보고 저에게 투자를 해줬어요. 한 달에 20~30만원 드는 책값을 대주고 대학원도 가게 했어요. 생활비보다 우선해서 책을 읽게 된 건데 삶이 많이 바뀌었지요.”
민정= “책 거의 끝부분에 ‘부족하지만 그래도 썼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래도’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거예요.”
봉진= “저는 사실 어려서부터 책을 막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었고요, 지금도 막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책 덕분에 삶이 바뀐 건, 맞아요. 거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책 덕분에 생각하는 것도 달라졌고 삶도 달라졌고 실제로 돈도 많이 벌었고요… 허허허허허. 그래서 저는 무조건 오프라인 서점 가서 제값 주고 책 사라고 말씀 드리는 거예요.”
민정= “몽촌토성역에 위치한 ‘우아한형제들’에 제가 이렇게 올 줄 몰랐지만… 와서 보니 역시나 서체들이 눈에 띄네요. 사실 한나체나 주아체나 가독에 능한 서체는 아니잖아요.”
봉진= “처음에는 저게 뭐야 많이들 그랬죠. 그런데 사람의 본성은요, 자주 보면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시간이 지나도 나쁜 기억이다, 그러면 그건 진짜 나쁜 거고 나쁜 놈이고요(웃음). 그래서 노출을 엄청 많이 시켰어요. 서체 무료로 풀고 막 그랬죠. 낯설지만 개성 있고 조금 모자란 것 같아도 친숙한 그 느낌이 먹힐 때까지요.”
민정= “‘배달의민족’도 그렇고 ‘우아한형제들’도 그렇고 이름을 지으며 재밌어 했을 대표님이 느껴지는데요.”
봉진= “콘트라스트가 있죠. 재밌죠. 자장면 시켜먹는데 무슨 심각하게 어려운 이름 왜 써. 대개 야근할 때 배달 주문은 막내가 한다는 데 착안해 키치나 패러디 콘셉트를 밀고 나갔던 게 ‘배달의민족’이었어요. 그리고 회사를 차리려고 보니 왜 나는 좀 다르고 싶다, 라는 꿈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데 한문 두 글자, 영문 이니셜 두 글자, 그래야 회사가 되는 거예요. 회사 이름이 힙했으면 좋겠다, 막 그러던 차에 작곡가 용감한 형제가 너무 재밌는 이름인 거예요. 저걸 패러디하자 했고 당시에 송강호씨가 나온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에서 ‘우아’를 가져왔죠. ‘우아한형제들’은 그렇게 나오게 된 거예요.”
민정= “회사 이름을 보고 저는 시 엄청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봉진= “어쩌나. 제가 시를 잘 안 읽어서. 그런데 제가 그 차이를 알아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온 사람들은 문학 책을 진짜 많이 읽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늦게 책을 보는 사람들은 문학 책을 잘 안 읽어요.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적인 마인드에 기인해서 경영이 뭐야 돈이 뭐야 자기계발은 어떻게 해야 해 이런 급한 책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 아니에요. 문학 책 많이 읽으신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요, 쓰는 단어가 폭넓고 풍성하고 그래요. 저는 그렇게까지 못해요. 먹고 살려고 읽은 것들에 회사에서 회의 진행해야 하는데 이 말 한 마디 해줘야지, 그런 필요에 의해서 책 보고 그랬으니까요.”
민정= “프로필을 보니 ‘과시적 독서가’라고 적으셨더라고요.”
봉진= “과시적 소비를 패러디한 건데요, 사람들이 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너무 솔직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공감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책으로 사람들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책 한 권 읽는 데 일주일씩 걸리고 보름씩 걸리고 되게 지루한 자신과의 싸움으로 알고 있잖아요. 제 책은 카페에서 한두 시간이면 다 읽어요. 다들 그 얘기를 해요. 내가 오랜만에 책을 다 읽었어. 한 시간 걸렸어, 허허허허허. 독자들이 그거 자체로 너무 기뻐하는 거예요. 책을 읽는 데 그 성취감이 굉장한 에너지를 주거든요.”
민정= “서른 넘어서부터 책을 읽었다고 하셨는데 물론 그 이전에도 책을 하나도 안 읽은 건 아니었을 거 아니에요.”
봉진= “그때는 평범한 독서를 했다는 얘기죠.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읽고, 게임하려면 시나리오 알아야 하니까 삼국지 다 읽고, 군대에서 고참들 말 못 걸게 하려고 ‘제3의 물결’ 이런 거 들고 있고 뭐 그 정도였죠.”
민정= “그래서 내가 좀 달라진다 하는 걸 얼마의 시간이 흐르니까 느낄 수 있던가요?”
봉진= “한 1년 정도요? 창업하기 전에 제가 우연히 짐 콜린스의 책을 여러 권 보게 되었는데 회사라는 조직은 비전과 핵심 가치가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데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실수를 많이 하지만 경영의 원칙이라든가 방법에 있어 좀 나은 점이 있다면 그런 책들을 계속 읽어왔기 때문일 거예요. 어쨌거나 책이란 건 결국 내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거구나, 인류의 모든 지혜가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구나, 우리는 정말 조그만 것만 알고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틀릴 수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검증해야 하고, 우리는 매일매일 의심해야 하고, 자기 신념이라는 것도 위험하다는 것에 경고등을 켤 수 있었죠. 책 덕분에요.”
민정= “복지를 중시하는 경영인으로 아는데 특히나 직원들에게 도서구입비를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면서요. 그 얘기 듣고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입사하고 싶더라고요.”
봉진= “일인당 평균 12만원쯤 되는 것 같아요. 조건은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는 거고요. 가장 최고로 많이 산 직원이요? 200만원까지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뭐, 평균이니 안 사는 친구들도 있고요. 지금 직원이 800명 넘어 거의 1,000명에 가까우니 지금 같은 상황이었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 시작할 때는 다섯 명이었으니까, 다 보이니까 100만원 쓰는 사람도 없었고요(웃음). 저 역시 책으로 수혜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런 조건 없이 책을 사서 보게 해주고 싶었어요. 책을 사는 조건으로 독후감을 제출한다든가 독서 토론을 한다든가 하면 책에 질리게 될 거거든요. 다 큰 성인들 책 읽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책 안 읽었다고 인사고과 안 주는 것도 무식한 거잖아요. 안 읽으면 자기 손해인 거지요. 그리고 책은 수준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인데 보통 회사 경영자들이 추천하는 책들은 주로 경영서 위주이곤 하잖아요. 많은 기업들의 추천 책을 보면 인생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들이 많은데 정말 그건 재미없는 책들이거든요. 그런 걸 왜 읽혀요. 왜 읽고요.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고민들 가운데 일도 들어가는 거잖아요. 다행히 직원들이 거의 다 똑같이 얘기해요. 단 한 권이라도 이전 회사 다닐 때보다 많이 읽는다고요. 저는 그게 되게 좋아요.”
민정= “출판인의 한 사람으로 이 사장님 누구냐 막 만나야지, 그랬거든요. 고맙더라고요.”
봉진= “그래서 출판사에서 책을 많이 보내주시는 걸까요.(웃음) 사실 저도 창작자 중 한 사람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창작자들의 창작물을 제값 주고 사주는 거예요. 제가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다른 데 가서 디자인 관한 물건 살 때 깎지 마라, 짝퉁 사지 마라, 돈이 없으면 두고두고 모아서 그걸 사는 일로 경의를 표해라, 그래야만 네가 디자이너로 성공했을 때 네 디자인을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산다…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거든요. 같은 입장으로 보자면 글 쓰는 분들에 대한 마음도 같아야 하는 거잖아요. 되도록 오프라인 서점에 가라는 건 온라인서점이 다분히 목적지향성일 수 있어서요. 서점에 가서 길을 잃었을 때 만나게 된 책의 경우 보석이 많았어요.”
민정= “주로 어느 서점을 자주 가시는지요.”
봉진= “회사 근처에 교보문고 잠실점이 있어요. 아마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알 걸요. 다 똑같은 법인카드가 있고 그걸 사용하거든요. 한 달 구입량이 꽤 될 테니까, 매출도 꽤 되겠죠. 책 사러 가면 직원들 많이 만나요.”
민정= “대표님처럼 직원들도 책을 통해 변화해가는 게 보이기도 하던가요?”
봉진= “우리 회사 구성원들 중에는 저자들이 되게 많아요. 아마 책을 출간한 이가 이렇게 많은 회사도 드물걸요.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요. 기회가 닿으면 책을 써라, 잘나서 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매듭을 한번 져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안 팔려도 내가 소장하면 지나온 내 시간을 돌아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해서 가급적이면 필자가 되라고 권해요. 전보다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변했는가 하는 건 실증하기 굉장히 어렵지만 저는 그래도 우리 회사 구성원들이 가진 문화적 소양이 꽤 높다고 자부해요.”
민정= “책을 보통 어떤 방식으로 읽고 기억하시는지요.”
봉진= “저는 기억력이 엄청 떨어져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올리죠. 다 읽기 전에도 막 괜찮은 글 있으면 찍어서 올려요. 다른 사람들은 다 읽은 줄 알아요. 좋죠, 뭐. 메모 노트도 되고 과시고 되고요(웃음). 페이스북이 제 독서 노트인 셈이지요. 사실 과시적 독서가라고 했지만 혼자서 할라치면 뭔가를 꾸준히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제가 하는 독서법은 꾸준히 콘텐츠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사람들이 종종 물어요. 요즘 어떤 책 보세요? 왜 요즘 책 안 올리세요? 그럼 그때 타임라인 보다가 아 일주일째 한 권도 안 올렸네, 혼자 당황하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두고 보던 책 찍어 올리고 그러면 있죠, 강제로라도 읽게 되는 힘이 있어요. 저는 그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민정= “가장 많이 산 책, 기억하세요?”
봉진= “‘논어의 말’이요. 피터 드러커 관련 저작들도 그렇고, ‘자유론’과 ‘군주론’도 많이 샀던 것 같아요. 저는 책을 책장에 다 꽂아두는 게 아니라 어떤 것들은 앞으로 비스듬히 세워서 전시하듯 놓곤 해요. 나의 인생의 책들은 제목만으로도 어떤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 싶거든요. ‘국부론’을 놓고 마주하는 자리에 ‘자본론’을 놓으면 그게 또 어떤 지도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민정= “실용서도 많이 읽으셨다고 했잖아요.”
봉진= “메모하는 법, 이메일 쓰는 법, 보고서 작성하는 법, 회의하는 방법, 심지어 상갓집에서 상주에게 어떻게 인사하는지, 대표기도는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는 책도 있어요.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싹 다 절판되는 거예요. 잘 안 팔려서 그렇겠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건 저희 장모님이 의료사고를 당하셨을 땐데요, 제가 책을 읽는 것을 한참 훈련할 때였는데요, 서점으로 바로 가서 의료사고에 관련한 책을 검색했어요. 책을 찾고 보니까 행동요령이 나와 있더라고요. 그런 뒤에 그 책을 쓴 저자인 변호사를 찾아가서 계약을 했어요. 소송 기간이 2~3년 걸렸지만 제가 이겼어요. 저는요,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일단 서점에 가서 키워드부터 쳐요.”
민정= “문득 지금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으실까요. 책에 가까운 어떤 단어일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지금 생각나는 책이 있다면요.”
봉진= “아, 급작스럽긴 한데… 일단은 ‘미움 받을 용기’와 ‘코스모스’요. 분야는 다르지만 둘 다 둔중한 울림을 줬던 책이에요. 또 한 권은 자크 아탈리의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요. 아탈리는 ‘자크 아탈리, 등대’를 워낙 감명 깊게 읽었던 터라 나오는 족족 사서 보는 믿음의 작가고요. 레이 달리오의 ‘원칙’도 되게 여러 번 읽었어요. 여러 권 사서 집에도 놓고 회사에도 놓고 차에도 놨어요. 와이프가 먼저 읽더니 달리오가 저랑 비슷한 데가 많다고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더라고요.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의 대표 달리오가 40여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회사를 키우는 동안 만들어온 어떤 원칙들을 써놓은 책인데 기본 원칙이 제가 삼아온 원칙들과 거의 흡사하더라고요. 그 결론에 ‘겸손’이라는 단어가 놓여 있는데 여러모로 저를 다지게 하는 책이에요.”
민정= “요즘에는 무슨 책 읽고 계신지요.”
봉진= “‘하버드 C.H.베크 세계사’를 얼마 전에 읽었고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보고 있어요. ‘편의점 인간’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삶의 스토리가 있다는 걸 일깨운다는 점에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특히 저는 젊은 친구들과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계속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중들이 어떤 책을 사고 읽느냐, 를 아주 중요하게 봐야 해요. ‘곰돌이 푸’ 시리즈도 여러 버전의 ‘빨간 머리 앤’도 다 샀어요. 베스트셀러는 일단 다 삽니다. 내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고민들을 하느냐가 제겐 정말 중요하거든요.”
민정= “그런데 혹시 무슨 띠세요?”
봉진= “용띠요.”
민정= “아, 저랑 동갑이시구나…”
봉진= “아 그런가요? 아무튼 책은 내는 것보다 팔고 팔리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팔린단 말이죠.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떠올랐어요. 말하자면 정면보다는 후면이랄까 그 이면을 알아보자 알게 하자 하는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현상 같기도 하단 말이죠. 어쨌든 전보다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유시민 작가님의 ‘역사의 역사’요. 뭐 이건 거의 예의죠, 예의. 그리고 NHK 다큐멘터리 제작팀에서 만든 ‘자본주의 미래 보고서’라는 책이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밑줄 이렇게 그어가며 읽고 있는데 ‘성장’이라는 단어에 요즘 아주 고심하고 있어요. 성장이 좋은 건가 다 같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에 늘 스트레스가 있어요.“
민정= “그래도 책 읽는 아버지라서 아이들이 책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은 주었겠어요.”
봉진= “큰애는 좀 잘 보는 편이에요. 평균의 어른보다는 그 속도가 좀 빠른 것 같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저랑 책 보는 건 훈련이 되긴 된 모양이에요.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아이가 읽고 싶은 거 읽게 하고, 제가 읽히고 싶은 것도 읽게 해요. 예컨대 방탄소년단의 뭘 사줄 테니 이걸 읽어라. ‘총균쇠’는 그렇게 읽혔어요. 공항 서점에서 샀는데 그게 눈에 보이는 책으로는 가장 두꺼웠어요. 아이가 아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랬고 저는 무조건 읽어라, 읽기만 하면 된다, 그랬어요. 나중에 보니까 제가 밑줄 긋지 않은 부분에 아이가 밑줄을 긋기도 했더라고요. 지금은 좀 보는 편인데 나중에 싫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책을 읽는 태도는 좀 가르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서점에 가서 네가 읽고 싶은 책을 갖고 와라 했더니 ‘BTS를 철학하다’를 들고 왔더라고요. 애 책상 위에 책이 놓여 있어서 한번 훑었다가 깜짝 놀랐어요. 장난 아니에요. 진짜 철학 책인 거예요. 가사에 있는 철학적인 부분을 애가 읽고 있더라고요, 허허허허허.”
민정= “홍성태 교수가 쓴 ‘배민다움’을 읽었거든요. ‘배달의민족 브랜딩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까 뭐랄까, 딱 ‘거시기’ 같은 말 같은 거예요. 배민다움, 대체 어떤 다움인가요?”
봉진= “하하 거시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일단은 위트가 있어야 하고 헐렁하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진지한 일을 해내는 것이요. 무엇보다 양극단의 것들이 다 수용 가능한 것이요. 직관과 논리, 좌와 우, 수평과 수직, 이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늘 중심을 잡고 중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중심을 잡는 첫 번째 방법은요, 양끝을 먼저 재는 일이에요. 양끝을 재지 않으면 중간을 맞출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항상 본인의 주관으로 자신이 중심에 있다고 믿어요. 내 생각이 세상의 평균이고 중심이고 그래서 중용을 지키고 있다고 믿지만 양극단의 것을 배우지 않으면 이걸 쓸 수가 없거든요. 중심을 맞추고 나면 시간이라는 개념이 투입되지요. 양극단이 움직이기 시작해요. 맞추려면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거예요. ‘디자인 씽킹’이라는 책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디자인 씽킹이란 분석적 사고를 바탕으로 직관적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같은 창의적인 활동은 논리적 사고보다 직감이 중요할 것 같지만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를 모두 해야 훌륭한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민정= “어라, 그게 시인데, 그게 딱 시론인데! 사실 (배달의민족이 발행하는) 잡지 ‘매거진 F’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 게 첫 호부터 주제가 ‘소금’이었단 말이지요. 상당히 뼈에 가까운 근원적인 주제였잖아요.”
봉진= “저희가 음식과 연관성이 깊은 회사잖아요. 이왕이면 제대로 진지하게 접근해보자 그랬는데 다뤄보니까 다 비슷한 거예요. 요즘 뜨는 셰프, 레스토랑, 트렌드 인터뷰 가지고는 차별화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음식이라 했을 때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 건 뭘까, 하니까 그게 식재료더라고요. 첫 호는 그래서 ‘소금’을 했고요, 두 번째가 ‘치즈’, 세 번째가 ‘치킨’이었는데 그게 너무 빨리 나갔다 싶어요. 네 번째는 ‘토마토’고 다섯 번째는 ‘쌀’이요. 가능한 5년 10년 계속할 생각이에요. 아시다시피 광고도 안 받아서 돈 엄청 들죠. 많이들 보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정도로들 사지는 않아요. 내용도 한국적이지 않아요. 애초에 영문판도 함께 준비 중이었거든요. 저는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같이 봤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이 잡지를 만들어요. 이런 좋은 책을 한국에 있는 배달의민족이라는 회사가 하고 있네, 이런 거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요, 꾸준하고 성실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잘하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고 봐요.”
민정= “얼굴을 보면요, 나 행복해, 그렇게 쓰여 있는 것 같거든요.”
봉진= “그래요? 저 요즘 사진을 찍고 있거든요. 저는 디자이너와 기업인, 이 두 가지 직업으로 살고 있는데 기업인으로서는 사실 즐겁지 않은 일이 더 많아요. 디자이너로는 계속 시각적인 작업물을 남겨야 하는데 산출물이 없는 거예요. 저에 대한 갈망이 계속 생기는 거죠. 그래서 비싼 카메라를 한 대 샀어요. 그러다 어느 날 흑백으로 얼굴을 찍는데 이게 저하고 잘 맞는 거예요. 얼굴은 자신의 얼, 그러니까 정신 상태가 표출되는 거잖아요. 행복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게 얼굴이에요. 행복한데 갑자기 팔꿈치로 웃지 않잖아요. 슬픈데 무릎에서 눈물 나오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네다섯 명씩 직원들 조를 만들어서 ‘오늘 라이카 아저씨 출동합니다’ 하고 만나서는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찍는지 말해주고 무엇보다 언제 행복한지 묻지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그거 같아요. 다른 사람과 행복에 관해 많이 얘기하는 거요.”
민정= “사인하실 때 이름 옆에 ‘봉’을 도장처럼 그리시네요.”
봉진= “봉이요? 어릴 때는 정말 싫었는데 사람들이 그 봉을 가장 많이 기억하더라고요. 지금은 봉을 더 적극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김민정 시인ㆍ난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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