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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슈] 최근 폭력사태 겪는 국내 퀴어축제, 20년 가까이 된 거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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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슈] 최근 폭력사태 겪는 국내 퀴어축제, 20년 가까이 된 거 아세요?

입력
2018.09.15 14:00
수정
2018.11.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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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슈]는 ‘모아보는 이슈’의 준말로, 한국일보가 한주간 화제가 된 뉴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경찰이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경찰이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을 가장한 변태, 절대 반대!!!”

지난 9월 8일 토요일, 인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 내걸린 현수막과 피켓의 문구입니다. 이날 열린 ‘제1회 인천 퀴어문화축제’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행사 참가자는 300명인데, 기독교단체 등 반대하러 모인 사람들은 1,000명 이상. 반대세력은 행사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몸으로 막아서고, 축제차량의 바퀴에 펑크를 내기도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반대 세력에 에워싸인 채 폭언에 시달렸지만 경찰은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퀴어축제에서 이런 수준의 ‘폭력’이 벌어진 것은 처음이라 상당한 이슈가 됐습니다. 2000년 9월 연세대에서 첫 행사가 열린 뒤 20년 가까이 된 행사인데 말입니다. 퀴어축제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들이 모여 영화제, 문화행사 및 가장 ‘핵심’인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입니다. 2015년에는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서울퀴어축제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같은 해에 미국 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었습니다. 2017년엔 우리나라 국가기관 최초로 국가인권위가 공식 참여했습니다.

지금 국내 퀴어축제는 서울, 부산, 대구, 전주, 제주 등에서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 입장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번 인천처럼 길거리에 드러눕고 몸싸움을 하는 등 테러를 방불케 하는 것도 매우 최근의 일입니다. 인천 퀴어축제의 유래 없는 충돌 사태 뒤에 있는 근 2~3년 간 커져온 국내 퀴어축제 혐오의 역사를 짚어 봅니다.

◇ 2015년 서울 퀴어문화축제 “거리 행진 금지”

2015년 6월 28일 제16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6월 28일 제16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6월. 퀴어축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진 시점인 듯 합니다.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퀴어문화축제 장소로 허가했기 때문입니다. 보수세력과 반 동성애 단체는 서울광장에서 연일 반대 집회를 열고, 노골적인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서울시를 비난했습니다.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진입은 수년 간의 노력 끝에 성사된 것입니다. 매년 신촌, 홍대 등지에서 행사를 열던 축제조직위는 서울 도심의 상징적 공간인 서울광장 집회 신고서를 수차례 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서울광장 사용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며 간신히 입성할 수 있게 됐지만, 이번엔 퍼레이드가 문제가 됐습니다.

축제 개막일인 6월 9일을 며칠 앞두고 경찰은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를 금지했습니다. 축제가 생긴 이래 15년 간 빠짐없이 진행된 거리행진을 막은 것입니다. 이유는 기독교 단체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집회 신고를 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충돌 우려”가 있다며 양쪽 단체의 집회를 모두 금지했지만 사실상 기독교 단체의 훼방을 용인한 것이란 비판이 나왔습니다.

법원이 조직위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퍼레이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28일 열리게 됐습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반대 시위를 하며 맞불을 놓았지만, 을지로, 퇴계로, 소공로를 지나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퍼레이드는 무사히 성사됐습니다. 성소수자 단체가 단독으로 서울광장에서 연 최초의 행사입니다.

◇ 2015년 대구 퀴어축제 “회개하라고 이 XX들아”

2015년 대구퀴어문화축제 당시 영화감독 이송희일씨가 트위터에 올린 현수막 사진. ‘함께 만드는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라는 문구 위에 축제 반대자가 뿌린 인분이 묻었다.
2015년 대구퀴어문화축제 당시 영화감독 이송희일씨가 트위터에 올린 현수막 사진. ‘함께 만드는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라는 문구 위에 축제 반대자가 뿌린 인분이 묻었다.

2015년 7월 5일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는 반대 세력이 뿌린 인분으로 얼룩졌습니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퍼레이드가 시작되자마자 한 보수 기독교 신자가 행렬을 막고 인분을 뿌린 것입니다. 그는 모 교회의 장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축제는 대구 중구청이 동성로 야외무대 사용을 불허하면서 하마터면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해당 사건은 결국 법원까지 갔고 법원이 조직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축제에 참가한 이들은 북을 치며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기독교 단체 회원들 사이에서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축제는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6월 23일 동성로에서 열린 축제에서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참가자의 얼굴을 무단으로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행진 차량을 가로막고 앉아 큰 소리로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조직위는 축제를 방해한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목사 3명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 2017년 제주 퀴어축제 “마을 정서와 맞지 않아”

2017년 8월 28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앞에서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결성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8월 28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앞에서 제1회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결성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제주의 첫 퀴어축제도 무탈하게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축제조직위는 축제를 진행할 장소로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을 염두에 두고 함덕리 마을회와 논의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거절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역 신문은 “마을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그 이유를 보도했습니다. 조직위는 다시 제주시의 신산공원을 택해 9월 28일 제주시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았으나 반대 민원이 쏟아지자 10월 17일 허가를 번복했습니다. 결국 법원까지 간 끝에 축제는 28일 예정대로 신산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조직위는 이달 29일 신산공원에서 2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 단체와 일부 사회단체는 같은 날 신산공원 사용허가 신청을 접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매년 늘어나는 추세지만 한국의 성소수자 혐오는 오히려 더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천 퀴어축제를 무산시킨 이들의 손에는 ‘사랑하기에 반대한다’는 팻말이 들려 있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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