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나를 두고 세미나 장소로 향하는 버스를 출발시켰느냐”며 조교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는 폭력 교수.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얻어낸 연구 성과를 보기 좋게 가로채 자신의 성과로 만드는 양심 불량 교수. 성희롱을 일삼거나 논문 대필을 시키고도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교수.
현실이 아닐 것만 같은 일들은 전부 대한민국의 대학원생들이 겪은 사례들이다.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회적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작부터 나왔지만 학교에 진정을 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해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학원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학생회 역량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대학원생들도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뜻밖에 웹툰이 연재되면서 대학원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너희들이 스스로 선택한 길 아니냐”라며 비웃거나 “회사에서도 불만은 있게 마련이다. 원하는 공부 원 없이 하니 견뎌라”고 남일로만 여기던 사람들도 웹툰을 통해 알려진 상아탑의 민낯 앞에 태도를 바꿨다.
이 웹툰 시리즈를 기획한 스토리 작가는 고려대 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한 염동규씨다. 그림은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 김채영씨가 맡았다. 염씨가 최근 입대했다. 염씨는 웹툰 제작을 시작한 2015년 원고료도 받지 않고 기고를 시작했다. 초기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업무였기 때문이다.
제29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웹툰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컸다”며 “이후 슬로우뉴스와 네이버, 다음 스토리펀딩 등에도 연재하며 1편 당 많게는 20만명씩 웹툰을 봤다”고 말했다.
교수에게 종속된 학생이라는 지위 탓에 어디에도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던 대학원생들이 현실을 고발하기엔 그야말로 최적의 수단이었다. “착각하지마, 우린 학생이 아니라 노예야”라며 넋두리를 동료 학생에게 털어놓던 대학원생들은 이제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피해 사실을 웹툰을 통해 알리기 시작했다.
초기 걸림돌은 ‘두려움’이었다.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고도 이들은 부당 사례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대학원 사회가 워낙 좁다 보니 학교나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자신이 드러날까 봐 제보를 꺼렸다. 교수의 눈 밖에 나면 논문 심사와 졸업, 나아가 취직까지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학생들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일부 사실을 각색하며 연재를 이어갔다. 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재구성했지만, 장면에 묘사된 적나라한 언행들은 날 것 그대로다. “말로만 죄송하다면 다야? 죄송하면 무릎 꿇어!”나 “교수님이 이번 위장 취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업계에 취직 못 하게 손 써놨대”와 같이 묘사된 사실관계는 과장되지 않은 실제 모습이다.
이렇게 완성된 웹툰은 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퍼졌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지들이 많다는 사실에 위로받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웹툰을 퍼 날랐고 이후 사연도 더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16회 분량으로 마무리된 웹툰 시즌1은 누적 조회 수 150만명을 넘기며 마무리됐다. 이후 단행본으로도 출간되며 교수의 ‘갑질’에 우는 학생들의 열악한 현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시즌2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격주로 연재됐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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