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실 학생은 초록색 팔찌! 안 마실 학생은 빨간색 팔찌입니다. 부담 없이 골라요!”
지난 달 말, 가을 학기로 새 학년을 시작하는 Y대의 모 학부 신입생 80여명이 모인 오리엔테이션(OT) 현장. 저녁 자유시간을 앞두고 빨간색 팔찌, 초록색 팔찌가 등장했다. 술을 안 마시는 빨간색 팔찌를 선택한 학생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동기들과 할리갈리, 우노 등의 보드게임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 학교는 2년 전 OT에서 신입생에게 선정적 게임과 음주를 강요해 논란이 됐던 곳이다. 개선을 논의한 학생회는 올해부터 ‘음주 선택제’를 도입했다. 반응은 좋다. OT에 참여했던 A씨는 “대학 와서 첫 행사라 걱정했는데 학생회가 분위기를 관리하는 게 느껴져 좋았다”고 전했다.
9월 개강과 더불어 대학가는 한창 MT 시즌이다. 대학가 MT는 2년 전부터 음주강요, 도를 넘는 게임, 불참비 등으로 논란이 컸었는데 개선이 됐을까? 가을 MT철을 맞아 당시 논란됐던 사례들을 점검해봤다.
◇ 지방 출신 차별 ‘지하철 게임’ 금지, 익명메신저 등장
H대 모 단과대학은 지난해 OT부터 ‘지하철게임’을 금지했다. 지하철역 이름을 대지 못하면 술을 마시는 게임인데,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 그뿐만 아니라 신입생들에게 ‘익명 메신저 아이디’도 비상연락망에 추가해서 제공했다. OT 중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언제든 신고하라는 것. 2년 전 여러 술을 섞은 일명 ‘총명탕’을 신입생들에게 강요했다가 논란이 된 후 이와 같은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다.
H대 모 학부는 참여강요로 논란이 됐던 MT를 온전히 자율로 바꿨다. 논란이 컸던 단체 기합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J대 또 다른 학부는 ‘불참비’ 악습을 폐지했다. 해당 대학은 2016년 MT에 불참하는 학생들에게 ‘불참비를 내라’고 공지해 논란이 됐었다. 당시 논리는 ‘장소를 이미 예약했으므로 불참자도 돈을 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동안 쌓였던 MT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까? J대 해당 학부의 올해 MT는 신청자가 적어서 아예 진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 “사고 방지 매뉴얼 만들겠다” 지키지 않은 약속
반면 변화가 미미한 곳도 있다. Y대 모 단과대학은 2년 전 SNS ‘대나무숲’에 “선배들이 새터에서 음주 압박을 줬다”는 제보가 올라와 논란을 빚었다. 학생회 측은 “‘사고 방지 매뉴얼’을 정립하는 등 노력하겠다”라고 사과했지만, 현재 마련된 매뉴얼은 없다. 당시 학생회장에게 문의하자 “선배들에게 술을 강권하지 말라고 구두로 전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 MT 이것만 지키면 대나무숲 올라올 일 없다
MT 관행 개선이 쉽지 않다는 토로는 다양했다. “가이드라인 만들어도 지켜지지 않는다”, “원래 한국에 술 강권 문화가 있는 것 아니냐?”, “과 자체에 군대식 분위기가 있어서 MT 관행 개선이 쉽지가 않다” 등.
그렇다고 무작정 손 놓고 지켜봐야 할까?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하고 지키려 노력해보는 것이 모두가 즐거운 MT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서울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MT의 나쁜 관행 개선을 위한 5가지 원칙을 정리해봤다. MT 운영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진주 한국일보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