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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장례식장’을 알아보다

입력
2018.09.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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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라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린 일러스트와 랄라 초상화다. 이순지 기자
랄라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린 일러스트와 랄라 초상화다. 이순지 기자

토끼의 시간은 사람보다 몇 배나 빠르게 흐른다. 2013년생 랄라는 사람 나이로 45살을 넘겼다. 중년의 토끼다. 4월부터 시작된 하악 치근단(뿌리) 농양은 랄라에게 4번의 수술을 안겨줬다. 재발이 잘 되는 병이라 이제 벌써 5번째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첫 수술을 앞둔 4월 수의사는 “반려인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토끼에게 수술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민한 성격 탓에 수술을 받다 죽는 경우도 있다. 또 농양이라는 병은 재발이 잦아 치료 중 숨을 거두는 토끼도 많다.

수의사의 말에 이때 처음으로 토끼 랄라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 데려올 때는 상상도 못했던 순간이었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지만 잘 보내주는 것도 반려인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이별 연습을 조금씩 시작했다.

먼저 포털 사이트에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해 검색해봤다. ‘펫 로스(Pet Loss)’와 장례 정보가 튀어나왔다. 펫 로스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 반려인들이 경험하는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을 말한다. 장례 정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장례식장 사이트에서 얻었다. 수 많은 정보들 속에서 장례식장 정보를 가장 먼저 정리했다. 혹시 모를 이별이 찾아오면 허둥대지 않기 위해서였다.

◇토끼와 이별하는 첫 단계 ‘장례식장’ 고르기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반려동물 장례식'을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다. 네이버 캡처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반려동물 장례식'을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다. 네이버 캡처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곳은 서울 시내 기준 약 50개가 넘는다. 보통 모든 장례식장은 염습(죽은 반려동물을 목욕시키고 의복을 입히는 것), 추모, 화장의 단계를 공통적으로 거친다. 장례식장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장례식장을 선택하는 방법은 개인의 기준에 따라 다르다. 다만 반려동물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살펴보면 반려인들이 추천하는 장례식장들이 있다.

첫째는 개별 화장을 하는 곳이다. 개별 화장은 반려동물을 한 번에 화장하지 않고 한 마리씩 화장하는 곳을 말한다. 반려인들은 “유골 손실을 막고 다른 반려동물과 유골이 섞이지 않으려면 반드시 개별 화장을 하는 곳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좋다”고 추천했다.

두 번째는 모든 장례 절차를 공개하는 곳이다. 어느 날 갑자기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반려인들은 그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럴 때 반려동물의 장례절차를 눈으로 확인하면 그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장례 과정을 공개하는 곳은 대부분 철저한 시스템과 위생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세 번째는 독립적인 공간을 제공하거나 예약 시간에 많은 사람을 받지 않는 곳이다. 갑자기 떠나간 반려동물과의 이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간에 사람이 많아 시끄럽거나 예약 시간에 사람이 몰리면 장례 절차 역시 번잡스럽게 이뤄질 확률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반려인들이 예약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는 장례식장을 선호한다.

토끼도 개,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장례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격은 장례식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토끼의 경우 20만~30만 원이다. 나의 경우 포털 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장례식장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개인 화장, 조용하고 독립된 곳, 홈페이지의 장례 서비스 설명이 충실한 곳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중 몇 곳은 휴대전화에 따로 메모를 만들어 저장해뒀다.

◇좋아하는 물건과 사진 준비하기

최근 랄라가 좋아하는 간식들이다. 이순지 기자
최근 랄라가 좋아하는 간식들이다. 이순지 기자

장례를 치를 때 가족들은 추모의 시간을 가진다. 이때 평소 반려동물이 좋아하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또 사진도 필요하다. 사람으로 치면 영정 사진 같은 것인데, 반려동물이 반려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표정이 이 사진에 담겨있다고 한다.

집에 가만히 앉아 랄라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봤다. 랄라는 물건에 대한 특별한 욕심은 없는 편이다. 대신 먹는 것에 욕심이 많은 편인데 좋아하는 영양제를 준비했다. 토끼에게 힘을 준다는 ‘토끼의 힘’이라는 영양제와 유산균이다. 또 랄라의 초상화도 장례식장에 가져갈 계획이다. 이 초상화는 오랜 시간 내 회사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랄라를 생각하며 힘을 얻기 위해 놓아둔 것이었다. 초상화 속 랄라는 2살 정도인데 장난기 많은 랄라의 성격이 그대로 보인다.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랄라 사진. 이순지 기자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랄라 사진. 이순지 기자

사진은 2살 때 찍은 스튜디오 사진과 집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골랐다. 스튜디오 사진은 랄라의 생일을 맞아 촬영한 것인데, 랄라의 성격이 고스란히 보인다. 이 사진들 역시 랄라의 장례식이 치러진다면 추모식 등에 쓰일 것이다.

랄라가 좋아하는 물건과 사진을 준비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랄라를 키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아픈 후 있었던 모든 일들이 추억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담담히 반려동물에게도 죽음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봤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을 기다리며

토끼 랄라가 눈을 감고 쉬고 있다. 이순지 기자
토끼 랄라가 눈을 감고 쉬고 있다. 이순지 기자

랄라의 죽음은 예상보다 빨리 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의 랄라는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보다는 상황이 괜찮다.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인지 아픈 치료도 잘 견디고 약도 곧잘 받아먹는다.

하지만 병원을 조금이라도 늦게 가면 금세 아프다는 사실이 얼굴에 드러난다. 최근 랄라는 수술을 앞두고 3주 정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랬더니 오른쪽 볼에 생긴 농양이 커졌다. 그리고 풀을 먹지 못해 이 모양은 난생처음 보는 형태가 됐다. 랄라는 좋아하는 영양제를 먹는 시간을 빼고는 자는 시간도 부쩍 늘었다.

아직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랄라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데는 반려인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많은 토끼 반려인들은 인스타그램 개인 메시지들을 통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반려인이 씩씩해야 랄라도 잘 견딜 수 있을 겁니다. 씩씩하게 지내세요.” 집토끼협회 등 해외 토끼 관련 단체들은 반려인들에게 토끼를 잃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은 “토끼의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먼저 토끼의 죽음을 맞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토끼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무지개다리’라는 코너 등에서 토끼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을 수 있다.

나와 작은 토끼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토끼가 아픈 후 시작된 일이다.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다가올 수 있다. 누군가는 ‘장례식장’ 알아보는 일이 잔인하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반려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행복을 준 가족을 잘 보내 주는 일. 마지막으로 내 가족 랄라에게 해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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