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앱' 문성욱 대표
※ 인터뷰에서 ‘아니요’를 찾아보세요. 크고 작은 ‘아니요’로 자신의 오늘을 바꾼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OOO을 품고 산다. 사직서? 아니다. 업무용어로 말하면 ‘건의사항’,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회사 욕’이다. 그러나 잘못 꺼냈다간 “일은 안 하고 말만 많은 사람”으로 찍힐 수도 있다. 그래서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고 눈치를 보게 된다.
입은 있으나 말은 못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곳이 있다. 회사 이메일로 직원임을 인증 받아야 가입할 수 있으며 모두가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애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다. 앱을 만든 문성욱(38) 팀블라인드 대표는 “직장인들이 솔직하게 소통하는 채널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 ‘소통’은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2015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두산인프라코어 ‘신입사원 명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미투, 최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까지. 모두 이 앱에서 시작됐다.
한국뿐 아니다. 블라인드앱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사람들도 애정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IT기업의 직원들 절반 이상이 가입해 있다. 한국과 미국을 한 달씩 오가며 일하고 있는 문 대표를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팀블라인드 사무실에서 만났다.
◇ 모든 이야기는 네이버에서 시작되었다
문 대표는 10년 가까이 직장인이었다. 여행 정보 서비스업체 윙버스(2005년 입사), 네이버(2009년), 티켓몬스터(2011년)에서 서비스를 기획, 총괄했다. 그리고 2013년 블라인드를 만들었다.
- 직장인 익명앱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
“윙버스가 네이버에 인수돼서 네이버에 입주했어요. 오프라인에서는 직원들 간 소통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인트라넷 익명게시판에는 오프라인에는 존재하지 않는 배려와 공감, 회사에 대한 건전한 토론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봤어요.”
- 그 익명게시판이 결국 사라졌다던데.
“정확히 어떤 사건 때문에 사라졌다고 단정짓기는 애매하지만,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동료들이 엄청 아쉬워했어요.”
- 네이버는 선망의 회산데, 왜 그만뒀나.
“그냥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리스크가 있고 다이나믹한 일을 선호해요. 안정적인 것보다는 내가 기여해서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 티몬으로 갔어요. 티몬에서 되게 재밌었어요. 그런데 회사가 커지면 회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소통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 해소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익명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만들기로 했죠.”
- 앱 출시 후 가장 먼저 공략한 회사는.
“네이버. 가장 시작하기 좋은 곳이었죠. 사내 익명 커뮤니티 경험이 충분히 있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니까요. 옛 동료들도 많았고요. 그 다음엔 티몬. 옛 동료들한테 전화하고 회사 앞에도 찾아가서 ‘빨리 퍼트려’ 얘기도 하고.”
- 언제부터 널리 퍼졌나.
“딱 어떤 시점이라고 얘기하긴 애매해요. 꾸준히 성장했어요. 중요한 이벤트는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이었죠. 사회적인 이슈로 커지기 시작하면서 직장인들이 블라인드를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 회사 곳곳 ‘갑질러’ 를 잡았다
IT업계를 시작으로 전 산업분야로 퍼진 블라인드 앱 가입자 수는 현재 150만여명, 가입한 회사는 4만개가 넘는다. 대기업(직원 300명 이상) 중 전체 직원의 99% 이상이 가입한 회사가 400곳, 직원의 80% 이상이 가입한 회사가 800여 곳. 대기업 직원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레 재벌, 대기업의 갑질 폭로가 나왔다.
- 창업할 때 이런 ‘갑질 고발’까지 예상했나.
“생각 했어요. 합리적인 회사에도 부분적인 불합리, 건전한 비판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걸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기업들로부터 압박 받은 적은 없는지.
“소소하게 지인들 통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글쓴이를 알려달라는 문의도 있었던 것 같고요. 간혹 ‘뒤로 거래를 한다’는 얘기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희는 애초에 그런 데이터(가입자, 글 작성자 정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제공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요.”
- 익명의 부작용도 있는 듯하다. 최근 일명 ‘직장인 지라시’ 사건도 블라인드에서 돌았다.
“그런 콘텐츠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확산을) 예방하는 게 목표예요. 저희 팀이 할 수 있는 내에서 처리했다고 알고 있어요. 지금은 다 숨김 처리 됐을 거에요. 익명 때문에 특정인이 피해를 입지 않게 더 엄격한 정책을 써요.”
◇ 미국에서는 흥하고, 일본은 접었다
팀블라인드 본사는 미국에 있다. 투자금이나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었는데도 미국에서 창업했다. 서비스 시작 후 5년이 흐른 지금, 미국 4만5,000개 회사의 직장인 50만명이 블라인드에 가입해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7만5,000명 중 5만명, 아마존 사무직 근로자 4만2,000명 중 3만명, 구글(3만명) 페이스북(3만명) 애플(2만명) 등의 직장인들이 블라인드에서 소통하고 있다.
- 미국에서의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보다.
“아니요. 사람들이 다 하지 말라 그랬어요.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는 돈 벌기 어렵다고요. 또 미국 회사는 수평적인 문화여서 솔직하게 소통을 많이 하기 때문에 더 안 될 거라고요. 그런데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시작했어요. 안 된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기도 했고요.”
- 미국에서 가입자는 어떻게 모았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지하주차장이 다 개방돼 있어요. 전단지 몇천장 들고 가서 엘리베이터, 주차장에 붙였어요. 그 직장에 다니는 한인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 미국 직장인들은 어떻게 사용하나.
“테크 회사들이 많이 쓰고 있어요. 신규 직원 교육자료에 블라인드를 소통 채널로 소개하는 곳도 있고, 사내에서 신규부서 만들거나 부서 옮길 때 구인도 블라인드에서 한다고 해요. 작년 9월 구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反)다양성 선언이 나왔을 때도 블라인드 구글 채널에서 찬반 격론이 벌어졌어요.”
- 영어를 잘 하시겠다.
“아니요. 잘 못해요.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티몬 다닐 때 미국 회사랑 합병을 해서 미국 본사에서 온 직원이 있었는데 1년 동안 미팅 요청하면서 못하는 영어를 계속 시키더라고요. 그 때 좀 많이 늘었고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서 절박한 상황에서 하니까 또 하게 되더라고요.”
- 유학을 다녀오시거나 영문학을 전공하신 건 아닌지.
“아니요. 전혀 아니에요. 한국에서만 살았고 한국에서만 직장 생활했어요. 원래 전공은 디자인. 대학교 3학년 마치고 윙버스에서 일하면서부터는 학교에 못 가서 졸업도 못했어요.”
- 미국 외에도 서비스 하는 국가가 있나.
“일본은 사업을 했었어요. 1년 반 정도.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 몇 가지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통해 특정 회사 직원들에게 광고를 내보내야 하는데, 일본은 SNS에 회사를 표시하지 말라는 회사 내규가 있는 곳이 많아 직원들한테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사내 IP를 조사해서 특정 IP주소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하려고 해도, 와이파이는 회사의 자산이라며 직원들이 사용하지 않는 문화 때문에 역시 안 됐어요. 결국 일본은 접었어요.”
- 실패한 곳은 일본밖에 없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홀드(holdㆍ중단)한 거죠.”
◇ ‘직장인 소통을 위한 회사’는 이렇게 소통한다
- 직원은 얼마나 되나.
“한국과 미국 합쳐 40명 정도.”
- 직장인들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회산데, 팀블라인드 직원들이랑 어떻게 소통하시나.
“얘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일주일에 한 번 전 직원이 모이는 회의도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회사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요. 궁금한 것 물어볼 수 있도록 하고. 노력은 하지만 부족한 점이 있을 거에요.”
- 팀블라인드도 블라인드에 채널이 있나.
“스타트업 채널을 쓰고 있어요. 직원 100명 이상 회사에서 30명 이상이 가입해야 채널이 열리거든요. 직원들은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가입해서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 혹시 직원들이 블라인드에 회사 욕도 했을 것 같나.
“그럴 수도 있겠죠? 네. 하하”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김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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