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게 안 한건 몰라도, 소분 안 한건 놈이 안다.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
독특한 제주의 벌초(伐草) 문화를 알 수 있는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속담이다. 추석 당일 성묘를 지내는 풍습이 없는 제주에서는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괸당(친척의 제주어)’들이 모두 모여 자신의 직계 조상의 묘 구별 없이 모든 묘의 잡초를 베어내는 ‘모듬벌초’가 이뤄진다. 이 시기만 되면 가족공동묘지나 묘들이 몰려 있는 중산간 일대에는 벌초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깊은 산속까지 예초기 기계음 소리가 진동하는 등 진풍경이 벌어진다.
모둠벌초에는 서울을 비롯한 육지부는 물론 일본 등 해외에 나간 친척들까지 고향을 찾는다. 일년에 한번은 꼭 연례행사로 친척들이 정을 나누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추석 당일 고향을 찾지 않는 것보다 모듬벌초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더 큰 불효로 여긴다.
모듬벌초와 관련해 제주에는 ‘벌초방학’까지 있었다. 제주 지역 학교에서는 매해 음력 8월 1일을 임시휴교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도내 모든 학교에서 벌초방학이 운영됐었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직장인들의 참여율 등을 높이기 위해 모듬벌초를 음력 8월 초하루 전후 주말이나 휴일에 맞추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벌초방학뿐만 아니라 핵가족화와 화장률이 높아지는 등 세태가 변화되면서 제주의 벌초문화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바빠진 일상생활은 물론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고 벌초할 후손들이 없는 가정에서는 벌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아예 벌초가 필요 없게 봉분을 쌓지 않거나 납골당으로 모시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제주 토박이인 김경남(55)씨는 “어릴 적부터 벌초는 연중 가장 큰 집안행사로, 군 복무 시기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다”며 “하지만 요즘은 직장생활 등 이런저런 핑계로 빠지는 친척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벌초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을 정도로 젊은 세대에서 벌초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