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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이 조작한 마약사범, 대법 20개월째 재심 결정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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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이 조작한 마약사범, 대법 20개월째 재심 결정 뒷짐

입력
2018.09.28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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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범죄자로 몰려 옥살이를 한 사업가 신모씨가 27일 대법원에 조속한 재심 개시 결정을 촉구하며 제출한 탄원서 일부. 독자 제공
마약 범죄자로 몰려 옥살이를 한 사업가 신모씨가 27일 대법원에 조속한 재심 개시 결정을 촉구하며 제출한 탄원서 일부. 독자 제공

대법원이 16년 전 속칭 ‘명동 사채왕’의 조작으로 마약 범죄자로 몰려 옥살이한 사업가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20개월 가까이 미루고 있어, 진실규명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련 재판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현직 판사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데다 1ㆍ2심 모두 재심 청구를 받아들일 정도로 명백하게 조작된 마약사건인데도 대법원이 뒷짐만 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약소지죄로 2002년 3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된 사업가 신모(59)씨는 27일 대법원에 3차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법이 “관련자들 진술이 판결 당시 증거와 모순된다”, “당시 판결을 그대로 둘 수 없을 정도로 증거의 명백성이 있다”며 받아들인 재심 청구에 대해, 대법원이 지난해 2월 사건 접수 이후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중대 오류가 있을 경우 당사자 청구로 판결의 옳고 그름을 다시 심리하는 절차다.

신씨는 “경찰에 억울하게 구속됐고,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봤다”며 “수 차례 탄원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대법원이 심리에 착수했는지도 의문”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어지럼증, 불면증으로 16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약을 먹지 않으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과거 잘못된 판결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하급심의 재심 개시 결정에도 대법원이 장기간 최종 판단을 미루고 있는 것과 관련해, 판사가 사건 무마 대가로 뇌물을 받은 사건이라 머뭇거리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신씨 사건에 대한 재심이 이뤄질 경우, 속칭 ‘명동 사채왕’ 최진호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최민호 전 판사 사건이 다시 거론돼 판사 신뢰도가 추락하는 걸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드러난 법원행정처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는 최 전 판사가 알선수재 혐의로 긴급체포된 2015년 1월 18일 “여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선동 사건 선고를 같은 달 22일로 앞당기자”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민감하게 대응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주요 사건과 달리 재항고 사건은 심리 진행상황을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 “재판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신씨는 사기도박에 속아 날린 돈 7억여원을 받기 위해 2001년 12월 서울 방배동 한 다방을 찾았다가 ‘명동 사채왕’ 최씨 일당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 틈에 일당 중 한 명인 정모(68)씨가 필로폰이 든 비닐봉투를 몰래 신씨 호주머니에 넣었고 때마침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신씨는 긴급체포됐다. 2002년 법원은 신씨 항변에도 유죄를 인정,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7년 뒤 정씨는 검찰에서 신씨가 경찰에 사기도박을 신고하려 하자 도박단이 최씨 일당에게 의뢰한 마약 조작극이라고 털어놓으면서 사건 실체가 드러났지만, 정작 최씨는 2010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최씨가 1심 재판 전 정씨에게 10억원을 주며 진술 번복을 회유한 사실, “신씨 주머니에 내가 마약을 넣었다”는 정씨 자백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재판과정에서 최 전 판사에게 2억6,864만원을 주며 수사 진행상황을 전달받기도 했다. 최 전 판사는 2015년 1월 18일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고, 다음해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신씨 변호를 맡은 허윤 서울지방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단순 마약사건인데다 당시 유죄로 인정했던 증거가 탄핵됐는데도 대법원 결정이 지연되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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