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10,000일의 전쟁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ㆍ유경찬 옮김
을유문화사 발행ㆍ621쪽ㆍ1만,8000원
◇추천사
베트남이 프랑스, 미국과 싸워 이겨내는 과정을 종군기자의 시각으로 잘 정리한 책입니다.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하는 전략이 잘 묘사돼 있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나라의 생존 방식을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기업이 많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를 잘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캐나다 방송기자 마이클 매클리어(89)가 1981년에 쓴 이 책은 베트남전쟁 전말을 다룬 기록물의 고전으로 꼽힌다. 베트남전 중후반기였던 1969~72년 북미 출신 기자로는 처음으로 세 차례나 베트남 공산주의 세력의 거점인 북베트남 지역을 종군 취재했던 매클리어는 전후인 79년 다시 한 번 베트남을 찾아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해 이듬해 ‘1만 일의 전쟁(The Ten Thousand Day War)’이라는 제목의 13부작 TV 다큐멘터리로 제작 방영했고 그 다음해 같은 제목의 책으로도 펴냈다.
이 책은 호찌민이 이끄는 공산주의 계열 무장단체인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이 프랑스, 미국과 연달아 독립전쟁을 치르고 마침내 베트남을 통일하는 30년(1945~75년), 일수로는 1만일 가량의 독립투쟁 과정을 다룬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집중하는 시기는 통킹만 사건(64)으로 촉발돼 파리협정(1975)으로 마무리된 베트남-미국 간 베트남전쟁기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여진 터라, 전쟁의 주요 국면을 좌우한 막전막후의 상황을 당사자들의 증언과 현장 취재를 통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최대 미덕이다. 심정적으로 미국보다는 베트남, 정확히 말하면 베트민 진영에 기운 경향이 다분하긴 하지만 저자가 저널리즘 정신에 기반해 당시의 절박한 질문(미국은 베트남전에 왜 참전했나, 왜 미국은 패하고 베트남은 승리했나)에 대해 사실적이고 객관적 해답을 찾고자 고투한 흔적이 여실하다는 점도 책의 신뢰도를 더한다.
저자는 2차대전 이후 조성된 냉전구도 속에서 남베트남의 꼭두각시 정부를 내세워 베트남 공산화를 막으려 했던 미국이 결국 전쟁의 전면에 나서 패전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는 과정을 당시 미국 정부의 역학관계를 조명하며 입체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존 F 케네디 정부의 부통령이었다가 63년 케네디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정권을 물려받게 된 린든 존슨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려는 정치적 야망과 군부 및 관료집단의 이해관계에 포위돼 이듬해 북베트남군의 선제공격(통킹만 사건)을 조작하고 개전을 단행하는 과정은 민주 정부의 비민주적 권력 행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한국 독자라면 우리와 경제적, 문화적으로 한층 가까워진 베트남이 세계 열강의 침략을 잇따라 물리치고 마침내 독립국가 건설에 성공한 베트남의 저력에 보다 관심이 갈 법하다. 2차대전 이후 냉전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분단을 맞게 된 베트남의 상황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고스란히 포개지지만, 결국 베트남은 자유주의(미국 프랑스)와 공산주의(소련 중국) 어느 쪽에도 포섭되지 않은 채 중립노선의 의지를 관철했다. 저자가 인용한 군사분석가 브라이언 젱킨스는 “베트남에서 미국은 공산주의와 싸운 것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타협이 불가능했던 베트남 민족주의와 싸웠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전 승리의 주역인 팜 반 동(전후 수상 역임)은 승전의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궁금하면 우리 역사를 한 번 보라. 외국 침략자들에 대한 투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적들은 항상 우리보다 강한 상대였다. 피할 곳은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싸워서 이겨야 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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