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지방 한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에 방문한 장애인단체 활동가 A씨는 깜짝 놀랐다. 대규모 장애인 복지시설에 교회가 들어서 있었고, 거주자들은 정기 예배와 식전 기도는 물론 교회가 주최하는 각종 종교활동에 반강제로 참여하고 있었다. 교회 내부에는 거주자들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헌금봉투가 죽 놓여져 있었다.
경기도 한 천주교계 장애인 복지시설에서는 헌금통장이 발견됐다. 거주자 명의 통장에서 매월 1만~2만원의 헌금이 정기적으로 빠져나갔고, 특별한 기도행사 등이 열리면 별도로 4만~5만원이 빠져나갔다. A씨는 “이들 시설 거주자 대부분이 극빈층으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고, 시설 거주자의 경우 수급비는 정부에서 시설에 바로 보내진다”며 “이들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이라곤 본인들이 직접 받는 쥐꼬리만한 장애인연금과 장애인수당뿐인데, 헌금 명목으로 현금을 빼앗는 것은 벼룩의 간을 빼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개했다.
◇복지시설 종교행위 강요 일반적… 반강제 후원도
3일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에 따르면 신체ㆍ정신장애인이나 극빈층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거주하는 복지시설에서 직원이나 거주자에게 종교행위나 헌금을 강요하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관련 노조와 시민단체의 촉구로 몇몇 국회의원들이 간신히 정족수를 채워 사회복지시설의 종교행위 강요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일부 보수 개신교계가 해당 의원들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아예 법안 발의 자체가 철회될 위기에 놓였다.
실제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가 지난 3월 서울시 사회복지노동자 1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업무시간에 종교행위가 있다는 응답은 66%에 달했다. 출근 후 예배, 회의 전 기도 등으로 업무와 긴밀히 엮여 있어 원치 않는 사람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일하고 있는 법인이나 시설에 후원하는 비율은 79%나 차지했는데, 이중 62%가 비자발적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이 낸 후원금은 사실상 복지관 운영비로 쓰이고 있다. 강상준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장은 “직원이 해당 시설을 운영하는 종교재단과 같은 종교를 믿더라도, 정작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초파일이 되면 본인이 다니는 교회나 절에 가지 못하고 재단이 운영하는 종교시설에 가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삼천배를 해야 승진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시설도 있다고 사회복지유니온측은 전했다.
수도권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근무했던 B씨는 “시설 측이 거주자들에게 매일 아침 4시 반에 기상하고 5시 반부터 1시간씩 예배를 보라고 강요했다”며 “이후 인권침해 논란 때문에 6시 기상, 7시 예배로 바뀌었지만 예배는 계속됐고, 아침 예배에 불참하려는 입소 대기자에게 ‘그러면 여기 있을 수 없다’며 사실상 강요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경기도의 한 천주교계 운영 시설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C씨는 “입사한 지 4개월이나 지났는데 근로계약서도 쓰지 못했고 주말, 추석연휴에도 휴일근무 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면서 “후원금 모집도 반강요한다”고 밝혔다.
◇법 개정 막으려 안간힘 쓰는 보수 개신교계
시민단체 등은 복지시설 내 종교행위 강요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해왔다. 이에 힘 입어 지난 8월 초 종교행위 강요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최대 벌금은 고작 300만원으로 종교계를 의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계는 ‘종교 탄압’이라며 집요하게 반대하고 나서면서 첫 관문인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조차 못한 채 철회될 위기다. 개정안을 발의한 11명의 의원 중 한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공동 발의한 의원 모두에게 개신교 관계자나 신자들이 2개월 내내 조직적으로 전화나 문자, 이메일, 직접 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강하게 항의를 해 왔다. 이 관계자는 “견디다 못한 일부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의원실에 철회해 달라는 의사를 표명했다”며 “최소 10명이 넘어야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회서 논의조차 못 해보고 철회될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초중고교에서 인권교육을 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인권교육지원법안’이 ‘인권 교육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개신교 단체의 조직적 공세에 시달리다 지난 1일 철회된 전례도 있다.
반대하는 측은 개정안이 ‘기독교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논평에서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복지 법인에서 종교적 색채를 지우려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종사자는 자신의 종교와 맞는 시설을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사회복지시설 대부분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 “헌법 가치 지켜야”
하지만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은 이 같은 주장이 종교시설과 사회복지시설을 혼동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종교기관이 교회나 절, 성당 등 종교시설에서 고유의 종교활동을 할 때는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지만, 법과 법률에 의해 설립되고 국가의 지원과 관리감독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때는 종교차별금지와 종교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다수 복지시설은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복지시설 운영자금 중 외부 기부금의 비중은 노인시설 1.65%, 아동시설 7.30%, 장애인 시설 5.03%에 그친다. 이상희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장은 “복지시설 대부분이 자체자금이나 외부 자금은 극히 적고 사실상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개신교 측의 조직적 반대에 개정안이 철회될 위기에 놓이자, 사회복지 관련 시민단체와 노조 등에서는 잇따라 성명을 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전국 34개 사회단체는 공동 성명서에서 “사회복지시설은 이용자들의 인간다운 삶이란 보편적 가치를 위해 존립한다”며 “사회복지시설의 종교적 강요 행위는 이제는 끝내야 할 종교적 적폐”라고 강조했다. 사회복지유니온도 성명에서 “국회의원들이 개정안 발의를 철회한다면 그릇된 신앙으로부터 비롯된 맹목적 반대를 용인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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