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오디세이] 예능 접수한 컬크러시 김숙ㆍ자학개그 박나래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 ‘언니’들의 고집이 통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는 개그우먼 김숙(43)과 박나래(33)다. 두 사람은 각자 올해에만 벌써 10편이 넘는 예능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김숙과 박나래는 ‘도플갱어’처럼 닮았다. 외모부터 비슷하다. 둥근 얼굴형에 똑 단발머리, 자그마한 체구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도 닮은 꼴이다. 스타가 되기까지의 인생 항로도 엇비슷하다. 스무 살에 부산에서 상경한 김숙은 올해 24년째 방송 활동을 하고 있고, 박나래는 고등학생 되던 해에 고향 목포를 떠나 이제 데뷔 13년을 맞았다. 두 사람이 성공의 꿀맛을 본 때는 불과 3년 전. 김숙은 2015년 JTBC ‘님과 함께 2’, 박나래는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를 도약대 삼아 스타덤에 올랐다. ‘님과 함께 2’는 김숙에 ‘걸크러시’ 이미지를,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박나래에게 ‘망가지는 개그달인’이라는 새 인상을 심었다.
대중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김숙은 원래부터 ‘걸크러시’였다. 할 말하는 ‘따귀소녀’(KBS ‘개그콘서트’)였고, 남자보다 잘나가는 ‘난다 김’(SBS ‘웃찾사’)이었다. 박나래도 기이한 복장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분장쇼’로 이름을 날렸다. 데뷔 때부터 얼굴에 구레나룻을 붙였고(KBS ‘폭소클럽2’) 민머리 가발을 수도 없이 썼다(KBS ‘웃음충전소’). 예능 프로그램에선 흔하지 않은 여성 캐릭터였다. 두 사람이 무명시절을 오래 보낸 이유이자 최근 각광 받는 요인이다. 김경남 대중문화평론가는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상도 과거의 순종적이기보다 개성과 주장이 뚜렷한 여성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며 “두 사람의 고집스런 집념이 승리한 결과”라고 평했다.
‘걸크러시’? 배려있는 ‘리스너’
“오늘 다들 괜찮지?” KBS 예능 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2016) 촬영이 있는 날이면 PD보다 더 긴장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김숙이었다. 카메라가 돌기 전부터 촬영장을 다니며 출연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프로그램의 맏언니이기도 했지만 배우 가수 등 다양한 직군이 모였으니 신경이 쓰였던 듯하다. 막 피어 오르기 시작한 ‘여자 예능’의 불씨를 꺼트릴 수도 있었으니까.
김숙은 ‘님과 함께 2’에서 “이상형은 조신하게 살림하는 남자”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쓰나”처럼 관습에 구애 받지 않는 발언을 거침 없이 하며 ‘걸크러시’의 상징이 됐다. 방송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김숙을 구심점으로 한 ‘언니들의 슬램덩크’와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2016),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2017)가 새롭게 전파를 탔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건 당연했다. 김숙은 한 녹화 현장에서 “출연자들의 생리주기도 챙겨야 할 판”이라고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숙은 정작 정면보다 측면이 더 많이 나온다”며 “‘리스너’(듣는 이)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큰소리만 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실상은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배려가 김숙의 반전 매력이라는 것이다.
‘뜨거운 사이다’의 문신애 PD는 “김숙의 따듯한 배려심은 출연자를 결속시키는 힘이 있다. 제작진이 믿고 의지할 정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tvN ‘주말사용설명서’에서 “센 척 하는데 너무 여리다”는 라미란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자학개그? 끝 모르는 ‘자기희생’
“불룩 나온 배요? 개그에선 재산이에요.” 박나래는 배에 힘을 주는 법이 없다. 맨살의 배가 더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배꼽티를 입고, 아예 비키니 수영복으로 시선을 압도한다. 제 몸 하나 망가져 수많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일이 즐겁단다. 여기에는 남모를 고민이 있다. “개인기가 1%도 없어요. 따져보면 유행어도 없고요. 그러니 몸으로…”라고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민머리 가발을 쓰고, 입가에 검은색으로 수염을 그려 넣는 일은 이제 예사다. KBS ‘폭소클럽 2’와 ‘웃음충전소’, ‘개그콘서트’에 이어 tvN ‘코미디빅리그’까지, 10년 넘게 기괴한 분장으로 웃음을 주다 보니 망가지는 일에 두려움이 없다. 이른바 ‘자학개그’가 박나래의 자산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많다. 박나래의 목포 외갓집은 MBC의 촬영지나 마찬가지다. MBC ‘나혼자산다’에선 박나래 전현무 한혜진 이시언 등의 ‘여름캠프’ 장소로 활용됐고, MBC ‘무한도전’은 박나래도 없이 양세형이 친구 집을 방문한 설정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노(NO)”를 할 줄 모르는 박나래의 성격 탓이다. 자신의 집에 마련한 ‘나래바’도 JTBC ‘헌집새집’이나 ‘나혼자산다’ 등에서 빈번하게 등장했다. ‘나래바’가 실제 존재하는 술집으로 오해하는 시청자들이 생길 만하다.
아낌없이 ‘퍼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방송사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유다. 새롭게 합류한 tvN ‘풀 뜯어먹는 소리’에선 직접 담근 술을 궤짝으로 들고 오고, ‘나혼자산다’에선 그룹 마마무의 화사에게 조명등과 돗자리 등을 선물하며 훈훈한 정을 나눴다. 제작진들은 “한번 박나래와 인연을 맺으면 끊을 수 없는 이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