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중국에 살고 있는 이모(54)씨. 지난 3월 감기 증상으로 현지병원을 찾았다가 병세가 악화해 급히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갔다. 서울 대형병원에선 심부전증 초기 증세라는 진단을 내렸다. 중국 현지병원에서 오진에 따라 부적절한 약을 처방 받은 결과였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파출부로 일하는 쓰촨(四川)성 출신 류(劉)모(37)씨는 중학생 딸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갈 때마다 월급의 4분의1이 넘는 500위안(약 8만2,000원)을 쓴다.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베이징 후커우(戶口ㆍ호적)가 없어 혜택을 볼 수 없어서다.
지난 1월 중국 전역에서 독감이 유행했을 때 대형병원들은 북새통을 이뤘다. 거의 대부분 언론이 관련 사진을 게재했을 정도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새벽부터 병원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고, 입원해야 할 만큼 증세가 심각해도 병실이 없어 발을 굴러야 했다. 이름난 몇몇 대형병원들에선 사실상 이런 일이 1년 내내 계속된다. 이를 두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일 “중국 대형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긴 줄은 중국 의료시스템 위기를 상징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의료체계의 공공성은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외형상으로는 공공의료기관 위주이지만 1, 2차 병원이 폭넓게 분포돼 있지 않고 의료진에 대한 사회적 처우가 낮고 그마저도 대도시에 몰려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84년 전면적인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이전의 무상의료 시스템을 영리 시스템으로 대체한 후과다. 정부 소유 병원에서조차 보조금 축소로 의사들이 봉급을 받지 못해 병원의 수익 창출에 내몰렸고, 돈 없는 서민들은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중국 정부는 2003년 뒤늦게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했지만 3차 대형병원의 의료비 인하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여전히 만성적 의료인력 부족과 대도시 위주 의료체계에 머물러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인구 1,500~2,000명당 한 명의 의사를 권고하지만, 중국은 그 비율이 1대 6,600을 넘는다. 게다가 수치상으로는 의료보험 가입률이 90%를 넘지만 보장률이 50%를 밑돌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전체 병원의 7.7%에 불과한 최고등급 대형병원들이 지난해 전체 외래환자의 절반을 진료했다는 통계는 중국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보여준다.
20년 이상 종사한 상하이(上海)의 한 대형병원 흉부외과 의사 월급이 1,350달러(약 151만원) 수준이라 젊은 의사들이 돈벌이가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로 몰리는 경향도 뚜렷하다. 대형 병원마저 주요 진료과목 인력이 부족할 정도이니 1,2차 병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일 수밖에 없다. 질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너도나도 대형병원에 몰리는 이유다. 상당수 대형병원과 명의로 소문난 의사들은 특진료에다 뇌물까지 받고 진료하기도 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6년 ‘13ㆍ5 사회ㆍ경제 규획’(2016~2020년) 발표 당시 의료분야 개혁방안을 제시했다.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 공공의료시스템 확충ㆍ개선과 등급별 진료체계 도입, 약품 공급망 확충 및 관리ㆍ감독 강화 등인데 핵심은 보건소ㆍ동네병원에서부터 대형병원에 이르는 공공의료기관을 체계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났는데도 중국인들은 두통만 있어도 대형병원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선다. 상하이에서 일하는 의사 주산주씨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계획이 성공하려면 부처 간 협력이 필요한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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