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이오의약품(생체 물질을 원료로 만든 약) ‘휴미라’의 기반 기술을 고안한 미국과 영국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프란시스 아놀드(62)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와 조지 스미스(77) 미국 미주리대 교수, 그레고리 윈터(67) 영국 MRC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원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발표된 노벨생리의학상이 면역항암제 ‘여보이’의 원리를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간 데 이어 휴미라까지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면서 명실공히 바이오의약품의 전성기임이 증명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류마티스 관절염과 건선, 염증성 장 질환 치료제로 2002년 등장한 휴미라의 주성분은 아달리무맙이라고 불리는 항체다. 인체 내에서 염증반응을 저해하는 이 항체가 약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건 ‘파지 디스플레이’라는 기술 덕분이다. 바이러스의 일종인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하는 이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과학자가 스미스 교수다. 박테리오파지에 원하는 유전자와 단백질 조각을 끼워 넣고 여러 종류의 생체물질과 반응시켜 그 단백질과 상호작용하는 특정 물질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윈터 연구원은 이를 응용해 박테리오파지에 여러 종류의 항체를 넣은 다음 다양한 항원(몸이 이물질로 인식하는 물질)과 반응시키면 특정 항원에 반응하는 항체를 알아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인체에서 과도한 염증을 일으키는 단백질(TNF-α) 항원에 반응하는 항체 아달리무맙을 찾아냈다. 이후 아달리무맙은 연 매출 20조원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개발돼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파지 디스플레이 기술은 아놀드 교수의 ‘화학 진화’ 개념에서 착안됐다. 그는 체내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인 효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을 무작위로 돌연변이시킨 다음 더 효율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만 선별해내는 데 처음 성공했다. 노벨위원회는 “지구의 생명체가 다양하게 진화하고 인류가 수많은 유용한 화학물질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이 같은 화학 진화 원리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아놀드 교수는 2009년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연구원에 이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5번째 여성이기도 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수상자들은 ‘진화의 힘’을 인류의 건강에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했다. 노벨화학상 상금 총 9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1억원) 중 절반은 아놀드 교수에게 돌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스미스 교수와 윈터 박사가 나눠 받게 된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