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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자본이 지배하는 영화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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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감독 “자본이 지배하는 영화계 안타깝다”

입력
2018.10.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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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이장호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이장호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봤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지금도 저는 현역인데 회고전이라니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회고전을 하기엔 제가 너무 어려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 이장호(73) 감독이 5일 해운대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에서 짐짓 서운한 척 농담을 건네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존경의 의미가 담긴 ‘디렉터스 체어’가 헌정되자, 여전한 열정을 과시하듯 의자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다. 깜짝 놀란 축하 손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7일 기자회견에서 만난 이 감독은 이틀 전보다 더 젊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멜빵바지 옷차림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 감독은 “내가 현역이라는 걸 보여 주려고 회고전의 밤에서 힘을 좀 써 봤다”면서 “부산에서 아주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이 감독은 1980년대 한국영화 리얼리즘의 선도자로 평가받는다. 1974년 멜로영화 ‘별들의 고향’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충무로에 데뷔했으나 1980년대 들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과 ‘어둠의 자식들’(1981) 같은 현실 비판적 문제의식을 지닌 수작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사회파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과부춤’과 ‘바보선언’(1983) ‘어우동’(1984)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시선’(2013)까지 대표작 8편이 상영된다.

이 감독을 축하하기 위해 배우 안성기, 이보희, 나영희 등 이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배우들도 부산으로 향했다. 회고전의 밤에서 만난 이보희는 “마치 내 회고전 같기도 하고 신작 시사회를 하는 것처럼 설렌다”며 “이 감독님은 나를 배우로 만들어 준 특별한 분”이라고 말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을 통해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도약한 안성기도 “이 감독님과의 만남은 굉장한 축복이었다”며 “감독님이 몇 작품 더 만드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1980년대 고속성장 시대의 그늘을 그린 ‘바람 불어 좋은 날’.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1980년대 고속성장 시대의 그늘을 그린 ‘바람 불어 좋은 날’.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배우 이보희가 출연한 ‘바보선언’.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배우 이보희가 출연한 ‘바보선언’.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 감독은 동료들과 함께 오랜만에 자신의 작품을 스크린에서 마주했다. “내 영화 인생은 ‘NG’였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 이 감독은 “전두환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돌파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그 고난들이 오히려 행운이 돼 작품 안에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대엔 영화진흥책이 아주 우스웠어요. 영화사들이 외화 수입 권한을 얻으려면 한국영화를 분기별로 1편씩 꼭 만들어야 했어요. 영화를 빨리 찍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지요. 그런데 제 시나리오가 사전 검열에 걸려서 제작이 자꾸 지연되는 겁니다. 정이 확 떨어져서 영화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미 영화사와 계약된 게 있으니 손해배상이 걱정되더군요. 영화를 망쳐 놓으면 자연 도태될 거고 영화사도 포기하겠지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비뚤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바보선언’을 찍었어요. 그런데 정부가 내 의도를 파악도 못하고는 해외 홍보용 우수 영화로 선정하지 뭡니까. 하하.”

정부의 사전 검열은 사라졌지만, 이제는 자본이 창작자를 제약하고 통제한다. 이 감독은 “모든 것이 돈의 논리로 움직이다 보니 창작자가 돈을 사용할 줄 모르면 영화도 만들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관객이 식상함을 느끼는 날이 오면 한국영화에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거장이 제시한 해법은 ‘작가정신’이다. “영화의 미래는 독립영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영화로 키워진 자산들이 언젠가 한국영화에 구원투수가 될 겁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3년 신작 영화 ‘시선’을 내놓았던 이 감독은 오래 전부터 기독교 영화 제작에 의지를 내비쳐 왔다. 요즘에는 원로배우 신성일과 함께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감독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멀지 않아 곧 ‘현역 이장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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