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예산이 높을수록 예술성은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흥행했던 영화들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블룸하우스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영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가 저예산을 고집하는 이유죠.”
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2009) 시리즈와 ‘겟 아웃’(2017)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공포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의 창립자인 제이슨 블룸(49) 대표가 설명한 ‘블룸하우스만의 영화 철학’이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을 방문한 블룸 대표는 7일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저예산 공포영화는 상업적 흥행과 비평적 완성도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장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룸하우스는 적은 예산을 쓰고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높은 수익을 올리는 제작사로 정평이 나 있다. 고작 1만5,000달러를 들여 무려 1억9,300만달러를 벌어들인 ‘파라노말 액티비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후, ‘인시디어스’(2011) ‘겟 아웃’ ‘해피 데스데이’(2017) 등 내놓는 작품마다 제작비 대비 25~60배에 이르는 수익을 거두며 명성을 쌓았다.
저예산이라지만 작품성도 놓치지 않는다. 미국 사회의 인종 편견을 ‘신체 이식’이라는 기이하고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겟 아웃’은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각본상을 받았고, 음악영화 ‘위플래쉬’(2015)로는 남우조연상을 비롯해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블랙클랜스맨’ 제작에도 참여했다.
블룸 대표는 “앞으로도 공포영화 제작에 집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보는 장르는 슈퍼히어로영화 아니면 공포영화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관객에게, 그리고 젊은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블룸하우스 영화들은 한국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겟 아웃’은 213만명, ‘해피 데스데이’는 138만명을 불러모으며 한국에서 비주류인 공포 장르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은 대단히 중요한 시장이에요. ’23 아이덴티티’(2017)와 ‘겟 아웃’은 미국 외 국가들 중에 가장 큰 수익을 거뒀고, ‘위플래쉬’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성공했죠. 한국 팬들의 사랑에 특별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블룸하우스는 2015년 한국 투자배급사 쇼박스와 협업을 논의하기도 했다. 결국 프로젝트가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블룸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각 나라에서 현지어로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블룸하우스의 브랜드와 전략이 다른 문화와 결합해 어떤 결과물을 낼지 궁금하다”고 여전한 관심을 내비쳤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부산행’(2016)을 미국에서 리메이크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원작보다 잘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영화에 나온 마동석은 정말 매력적이더군요. 블룸하우스에 딱 어울리는 배우 같아요. 한국의 드웨인 존슨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신작 공포영화 ‘할로윈’을 선보인다. 슬래셔 무비의 전설로 불리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을 잇는 동명 속편으로, 전편에서 40년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와 닉 캐슬이 전편과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 블룸 대표는 이미 속편이 9편이나 제작된 ‘할로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이라 끌렸다”며 “블룸하우스만의 독특한 시선과 시스템으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룸하우스의 다음 목표는 이미 존재하는 콘텐츠 판권을 확보해 우리만의 제작 노하우와 전략으로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새로운 비전도 제시했다.
블룸하우스 영화는 단순하게 말초적인 공포감을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트와 풍자로 정치적 메시지를 풀어내 더 큰 공감을 산다. 블룸 대표는 “할리우드는 컨셉트와 아이디어를 먼저 정한 뒤 이야기를 풀지만,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먼저 찾아내고 이를 발전시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며 “할리우드가 거꾸로 일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영감은 어디에서 얻을까. “많은 영화제를 다니며 많은 영화를 봅니다. 관심이 가는 감독을 만나 블룸하우스에 대해 소개도 하고요. 최근에는 공포 장르가 흥행하면서, 절대로 공포영화를 만들 것 같지 않은 감독들도 공포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을 꼽아달라고 하자 “개인적으로 (영화 ‘팬텀 스레드’ 등 예술영화로 유명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을 좋아하는데 아직 나에게 연락이 안 오는 걸 보니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블룸 대표는 “(영화 ‘디센던트’ ‘네브라스카’ 등 코믹한 드라마를 주로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곧 같이 작업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하면서 “‘23 아이덴티티’ 후속인 ‘글래스’는 내년 1월, ‘해피 데스데이’ 속편 ‘해피 데스데이 투유’는 2월에 나온다. ‘겟 아웃’을 연출한 조던 필 감독의 신작도 봄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신작 소식도 전했다.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을 공포에 떨게 한 블룸하우스의 수장은 무엇에서 공포를 느낄까. 블룸 대표의 짓궂은 답변에 기자회견장에 폭소가 터졌다. “지금 저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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