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성 A씨는 ‘무전취식의 달인’이다. 2007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사기죄로만 14회 처벌받았다. 술값을 낼 것처럼 속여 비싼 술을 먹은 뒤 돈을 안 내는 게 그의 장기다. 징역 8월, 징역10월 등을 선고받았지만, 징역은 재범을 막지 못했다.
또 50대 B씨는 사기죄로 징역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출소했으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사기행각을 벌였다. 결혼 어플리케이션에서 만난 17명의 여성에게 사업가 행세를 하며 690만원 가량을 받아 챙긴 것. 울산지법은 1일 B씨에게 사기죄로 징역 1년을 선고 했다.
누범 전과자가 개과천선하기는 쉽지 않지만, 유독 사기죄에서 재범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재범률이 40%에 이르러, 사기 전과 9범이 초범보다 더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형량이 약한 점, 개인 채권ㆍ채무 문제를 형사적으로 풀려는 관행이 사기범을 양산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와 검찰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과 여부가 확인된 사기범 중 9범 이상은 3만622명으로 초범(2만7,746명)보다 많았다. 전과 9범이 초범 수보다 많은 경우는 전체 범죄를 통틀어 사기가 유일하다. 중독성 높은 도박죄도 초범(9,050명)이 9범 이상(3,690명)보다 많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사기범이 처벌을 받은 뒤 다시 사기죄를 저지르는 비율(동종 재범률)은 38.8%로 전체 범죄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강력범죄 동종 재범률 12.4%의 세 배. 2014년 사기죄를 저지른 사범의 77.3%가 사기전과자였다.
법조계에선 가벼운 형량이 이런 상황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형법상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법원의 양형 기준상 일반사기(1억원 이하) 기본형량은 징역 6월~1년6월에 불과하다.
형량이 낮으니 갈수록 죄에 무뎌져 범행은 반복된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죄책감은 죄를 처음 지었을 때 가장 크고 이후에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며 “죄를 반복해서 짓는 사람들이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개인간 채무 문제를 풀 마땅한 방안이 없어 돈 빌려줬다 못 받는 경우의 상당수가 사기죄 고소로 이어진다는 점도 지적된다. 사기죄는 2016년 25만600건이 발생해 전체 범죄 유형 중 1위를 기록했고, 2위 절도(20만3,573건)를 크게 웃돌았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채권자가 돈을 받아내려면 스스로 자료를 찾아야 하지만, 수사기관에 고소하면 검ㆍ경이 직접 범죄 관련 자료를 모은다”며 “이렇다 보니 민사로 해결할 일까지 형사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간 문제로 인한 경미한 채권ㆍ채무 관계는 정식 수사 대신 형사조정이나 화해절차 등을 밟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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