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생리대 자판기가 ‘계륵’ 신세다. 위급상황 대비용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여전하지만, 작년 유해 생리대 파동에 따른 안전선호 학습효과와 결제방식 변화에 밀려 사라지거나 외면당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연세대는 교내 43곳에 있던 생리대 자판기를 없애고 대신 8일부터 ‘양심 생리대함’을 설치했다고 11일 밝혔다. 연세대 생활협동조합위원회가 적정량을 채워놓으면 필요한 학생이 가져다 쓴 뒤 이후 자발적으로 다시 채워놓는 ‘품앗이’ 방식이다. 연세대 관계자는 “자판기당 한 달 이용 건수가 평균 3.7회에 그치는 점을 감안해, 43개 자판기 1년 관리비 960만원을 차라리 생리대 직접 구매비용으로 쓰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지 타산을 헤아린 조치인 셈.
서울대는 올 초부터 학생들이 요구해 왔던 생리대 자판기 설치가 최근 무산됐다. 한 달 관리비용(인건비)이 70만원에 이용 실적은 거의 없다는 이유로 2014년 학생회관에서 철거된 이후 4년 만에 부활을 노렸으나, “교내에 언제든 생리대를 살 수 있는 24시간편의점이 있다”는 반론을 넘지 못했다.
다른 대학 생리대 자판기도 비슷한 처지다. 동국대 교내 총 15대의 생리대 자판기가 벌어들이는 돈은 월 15만원, 인건비 70만원에 턱 없이 모자란 적자다. 숙명여대(20대) 이화여대(25대) 등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여대조차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이화여대는 외부업자 위탁에서 교내 생활협동조합 직접관리라는 고육지책을 짜냈다.
학생들은 자판기의 ‘동전’ 결제방식이 맘에 안 든다고 입을 모은다.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박모(24)씨는 “다들 카드나 모바일페이를 이용하는 요즘, 지폐도 아니고 동전으로만 생리대를 살 수 있는 자판기는 정작 긴급상황에서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유해 생리대 논란으로 인해 선택이 까다로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성균관대 국문과 이모(25)씨는 “학교 생리대 자판기에 유해 생리대로 지목됐던 제품이 여전히 비치된 것을 보니 냉큼 손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대학보다 앞서 생리대를 공공재로 여기는 사업을 시나브로 선보이고 있다. 8일부터 서울시는 서울도서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공공시설 화장실 10곳에 비상용 ‘생리대 무상자판기’를 설치했다. 여성들의 건강권 증진, 일상생활의 불편 개선을 내세웠다. 앞서 지난달 서울 도봉구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지하철 창동역에 생리대 무료자판기를 뒀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