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해외 명품 매장에서 일한다. 매니저인 그의 영어 이름은 마이클. 진상 고객으로부터 받는 무시엔 이골이 났다. 그는 모욕을 자기 자신이 아닌 마이클이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공과 사를 구별하는 게 프로 의식에 투철한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출근길에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갑자기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와 숨쉬기조차 어려워서였다. 공황장애다. 누군가의 욕구에 맞춰 자신을 쉼 없이 지워나가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발작은 자기 소멸의 끝에 몰린 이가 버둥거리며 내놓은 처절한 아우성이다.
내가 나의 삶에서 멀어질수록 위험하다. 마이클로 산 매니저뿐일까. 수많은 이들이 학교 혹은 군대 그리고 회사에서 저마다의 마이클을 만든 뒤 경쟁이라도 하듯 자신의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자살률은 몇 년째 세계 최고 수준. 나를 버리며 사는 보통의 존재들에 예고 없이 찾아올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일은 시대의 과제가 됐다.
책이 내놓은 해법은 명확하다. ‘나에게 집중하라’다. 중요한 건 이성이 아닌 감정에 충실하기. ‘월급도 많이 받는데 마음의 병 운운하는 건 사치 아니야?’ 이건 이성이다. 혼란으로 인한 아픔이 나고, 나를 또렷이 찾는 일에서 치유는 시작된다. 그러기 위해선 질문의 중심도 ‘나’로 바꿔야 한다. 회사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계속 봐야 하는 상사인데 어쩌지?’가 아니라 ‘날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생각의 각도를 틀어야 한다는 얘기다. 솔깃하다.
정혜신 지음
해냄 발행ㆍ316쪽ㆍ1만5,800원
‘중도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했다. 나를 찾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공감이 필요하다. “네 마음은 어떠니?” 타인의 공감이 있어야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공감에도 요령이 중요하다. 연인과의 이별을 고민하는 지인이 있다고 치자. “별다른 사람 있는 줄 아니?” 누군가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상황에 대한 설명만 하는 조언은 하나마나다.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가 더 마음에 가 닿는 말이다. 저자가 ‘당신이 옳다’를 제목으로 단 이유다.
대중적으로 친숙하고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상담실 밖으로 심리학을 꺼내려 한다. 누구라도 ‘심리 심폐소생술(CPR)’이 가능하도록 지침을 알려준다.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을 ‘공감의 외주화’로 표현했다. 급성 천식에 시달리는 아이를 둔 부모는 늘 분무제를 갖고 다닌다. 저자는 공감도 이렇다고 본다. 지난 15년 동안 상담실에서 나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국가 폭력 피해자 등을 거리에서 상담하며 공감의 내주화를 주장하는 그의 말은 여전히 묵직하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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