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내외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여전히 견고하다.”(2018년10월12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강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1997년10월28일 당시 강경식 경제 부총리)
김 부위원장은 12일 오전 부랴부랴 유관기관과 긴급 금융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시장에 이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전날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이 미국 증시의 급락 여파로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하며 시장에 공포감이 확산되자 “위기는 없다”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외부충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증시가 영향을 받았지만 대내외 건전성이 좋은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신흥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시장의 영향이 적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이날 코스피는 하루 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코스피는 32.18포인트(1.51%) 오른 2,161.85로 종료됐다. 코스닥 역시 3.41% 오르며 9거래일 만에 상승 마감됐다. 전날 10.4원 급등한 원ㆍ달러 환율은 이날 13.0원 내린 1,131.4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중 정상회담 성사와 미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진 않을 것이란 기대가 분위기를 바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날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전일 급락에 따라 기계적인 반발 매수세 때문으로 분석했다. 나아가 이러한 기술적 반등에 속아 긴 터널이 시작일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20여년 전 외환위기 직전에도 정부가 ‘펀더멘털’을 들먹이며 위기를 애써 외면한 점을 떠 올렸다. 시장에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직격탄을 피하기 힘들 것이란 비관론도 커졌다.
정부에선 아직 낙관론이 우세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시장 위기가 올 거라고 생각은 안 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판단은 우리 경제의 건전성이 과거 위기 때에 견줘 상당히 좋아진 데 근거한다. 금융위기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은 2008년말 2,011억달러 수준에서 지난달엔 4,030억달러까지 늘었다. 이는 세계 8위 수준이다. 정부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며 한미간 기준금리가 뒤집어졌지만 당장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국채에 투자한 투자자의 70%가 중앙은행과 같은 국부펀드로 이 비율이 2008년에 견줘 배 가까이 늘었다”며 “이들은 국가의 신용도를 보고 투자하는 만큼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고 해 바로 돈을 빼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미국의 채권금리가 우리보다 다소 높긴 해도 1년 후 선물매도에 따른 비용까지 감안하면 여전히 국내 채권 수익률이 미국보다 0.4%포인트 가량 높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위기는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위기 발발 한 달여 전까지 경제팀은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이 강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 같은 패턴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반복됐다. 당시 정부는 위기의 수준을 과소평가하다 뒤늦게 각종 대책을 내놨다.
미중 충돌에 따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 정부의 위기 인식이 한참 떨어진다는 우려도 적잖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우리나라가 내년엔 중국발 경제 쇼크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을 고사시키기 위한 경제 정책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며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반도체의 40%가 중국으로 들어가는데 미국이 과연 이를 묵과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2011년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15%였다 이듬해 잠깐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 그 여파로 2012~16년 한국 경제는 상당한 침체를 겪었다”며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2.5%로 내려가는 내년쯤 중국발 경제쇼크가 다시 덮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도 “무역분쟁에 따른 공포감이 드러난 게 지난 10일 뉴욕증시이고, 최소 3개월은 조정에 들어가 추가로 10%까진 빠질 것”이라며 “이 영향을 우리나라 증시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국내 증시 조정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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