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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정적(靜寂)] 위험(危險)

입력
2018.10.15 14:5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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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나를 확장하여 내가 간절히 바라는 내가 되기를 훈련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나의 육체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줄 수련장은 어디인가? 바로 산이다. 나는 집 근처 가평에 위치한 유명산을 자주 찾는다. 유명산은 항상 어제의 나의 몸과 마음을 비워, 내일의 내가 되길 촉구한다. 산(山)은 신비한 장소다. 땅이면서 하늘이고 하늘이면서 땅이다. 땅과 하늘의 경계에 절묘하게 위치한 성스러운 경지다. 인간은 산을 멀리서만 그 전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에 가까이 가면, 산의 자신의 전체 모습을 감추고 자신이 소유한 지극한 일부인 나무, 바위, 시냇물, 그리고 동물들만 살짝 보여준다. 산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애써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정상은 산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만 허용되는 천국이다. 특히 높은 산을 오르려는 자는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오랜 등산 훈련을 통한 체력과 정신력, 산에 어울리는 예를 갖춘 의상, 신발, 그리고 장비를 구비하는 정성이다. 그러나 성공적인 등산은 기후가 결정한다. 기후는 등산하는 자의 노력으로 획득되는 대상이 아니라 운(運)이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겸손하다.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히말라야 원정팀은 히말라야 산맥의 한 산인 해발 7,193m인 구르자히말을 등반하기 위해서 지난달 9월 28일에 해발 3,500m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구르지히말은 수직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인간의 접근을 불허한다. 김창호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정상을 세계 최단기간에 모두 정복한 개척자로, 정상까지 오르는 독창적인 길을 개척할 참이었다. 그러나 이 원정팀이 하산 예정일인 10월 12일에 내려오질 않았다. 현지 수색팀이 베이스캠프에 올라 발견한 것은 원정팀 5명과 현지 셰르파 3명의 시신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누구도 극복할 수 없는 갑작스런 눈 폭풍이 이들 모두를 사후세계로 데리고 갔다.

인류 최초의 문자를 발명한 고대 수메르(현재 이락 남부지역)인들은 우주를 다음과 같이 세 개로 구분하였다.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인 ‘땅’(수메르어로 ‘키’KI), 신이 거주하는 장소인 ‘하늘’(‘안’AN), 그 중간의 무시무시한 장소인 ‘산’(‘쿠르’KUR)이다. ‘쿠르’의 의미는 ‘산’이면서 동시에 ‘사후세계’라는 의미다. 순간을 살다 금방 사라지는 인생을 안타깝게 여긴 소수의 인간들은 ‘등산’을 통해 사후세계를 미리 경험한다. 길가메시가 영웅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장소가 바로 ‘산’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험준한 산을 등산하여, 죽음의 시점에서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는 혜안을 얻는다. 이 혜안은 순간의 삶을 영원의 삶으로 만드는 인생의 문법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는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허송세월을 보내던 인간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이집트인을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광야로 도망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양을 치며 멀리서만 바라보던 높은 산, 호렙산을 등산하기로 결심한다. 호렙산은 어떤 인간도 발을 들여 놓은 적인 없는 구르자히말과 같은 높은 산이다.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이 호렙산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 순간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이나 연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다가가자 나무가 말을 건넨다.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당신이 선 그 장소는 거룩한 땅입니다. 샌들을 벗으십시오.” 이 말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가 아니라, 모세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이자 ‘침묵의 소리’였다. 모세는 자신의 서있는 그 장소가 성스러운 장소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지난 40년 목동생활을 통해 수없이 지나친 떨기나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거룩’이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일상에서 더 나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구별한 시간과 장소다. 그래서 모세는 그 자리에서 샌들을 벗었다. 그는 이제 양떼를 인도하는 무명의 목동에서, 양떼처럼 갈 길을 몰라 헤매는 동족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민족영웅이 되었다. 그는 동족들을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꿈한 사막으로 인도할 셈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의 ‘중간’ 어디라고 말한다. 그 중간이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과거의 자신에서 탈출하여 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바로 ‘위험’이다. 우리가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감수할 때,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위험감수’란 최악의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준비와, 그 계획을 겸손하고 강력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의연한 마음의 상태다. ‘위험(危險)’이란 한자는 한 인간이 깎아지른 듯이 서있는 험한 산(險) 벼랑 끝(厃)에 서서 무릎(㔾)을 꿇은 모습이다. 구르자히말에서 인간이 마주할 수 없는 거대한 눈 폭풍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삶을 마주한 김창호 대장 원정팀에 경의를 표한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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