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모험/미히르 데사이 지음ㆍ김홍식 옮김/부키 발행ㆍ364쪽ㆍ1만8,000원
◇추천사
금융의 본질에서 인간성을 재발견해 금융의 의미심장한 가치를 재발견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이를 수식이나 그래프 하나 없이 문학, 영화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재미있고 쉽게 설명하고 있어 금융업 종사자뿐 아니라 금융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미 문학의 고전이 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서 월스트리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주인공 바틀비는 고용주인 변호사의 업무 지시 때마다 “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꾸한다. 이 유명한 대사를 두고 “수동적 저항의 모델” “월가의 ‘점령하라’ 시위의 원형”이라는 해석까지 나왔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이 책의 저자는 이를 금융상품의 일종인 ‘옵션’과 연결 지어 명쾌하게 해설한다. “현실보다 잠재성을 더 좋아하고, 실제 결정보다 선택의 여지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더 선호한다. 이것이 바틀비가 하는 행동이다.”
‘정해진 조건으로 자산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옵션은 오늘날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첨단 금융공학의 산물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저자는 ‘선택의 여지’라는 친숙한 말로 이를 쉽게 설명한다. 비교적 적은 비용을 들여 매매권을 사뒀다가 혹시 시장 상황이 맞으면 권리를 행사해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한 선택지를 마련해두는 상품, 그것이 옵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지를 과다하게 늘릴 경우 옵션 간 상충이 일어나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게 된다. 아무 행동도 판단도 않고 살아가다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 바틀비와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심리학 등 인문학적 영역을 끌어들여 금융의 주요 개념을 직관적으로 풀이하는 게 이 책의 집필 의도다. 1~7장에서 보험, 위험관리(옵션과 분산), 가치평가, 주인-대리인 문제, 합병, 레버리지, 파산을 차례로 설명하고, 마지막 8장에선 금융의 원리가 좋은 삶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짚는다.
현대 미술의 총아로 꼽히는 제프 쿤스는 저자에게 빚을 지렛대 삼아 수익을 추구하는 레버리지를 설명하는데 딱 맞는 사례다. “내게는 (작품)제작에 필요한 능력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는 쿤스는 아직 완성도 안된 작품을 수집가에게 먼저 거액에 팔고(금융 용어로는 ‘선물 계약’) 그 돈으로 뉴욕 맨해튼의 공방에서 직원 125명을 부리며 작품을 제작한다. 먼저 빚을 낸 뒤 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레버리지 전략인 셈이다.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부르봉 왕가의 실정은 보험시장의 난제인 역선택(보험사가 가입자 정보를 모른 채 상품을 팔아 손해율이 높아지는 상황) 문제를 상기시킨다. 전비 조달로 파탄 난 재정을 만회하려 대국민 연금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던 루이 16세 궁정은 판촉 차원에서 연령과 무관하게 같은 액수의 연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그 결과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아 궁정 입장에선 고수익 판매처인 고령자는 연금을 외면한 반면 국가 비용을 높이는 젊은층 판매가 급속히 늘었다. 이웃나라 스위스에선 튼튼한 다섯 살짜리 소녀들 명의로 연금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프랑스 재정 파탄과 루이 16세의 몰락을 재촉했다.
금융과 인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수식이나 그래프 하나 없이도 알찬 금융 교양서가 탄생했다. 학생들이 세 차례나 명강의로 선정했다는 저자의 빼어난 설명력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수강 경험을 쓴 영국 기자의 책(‘하버드 경영학 수업’)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어머니에게 금융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없다면 스스로가 금융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란 미히르 데사이 교수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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