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이 CEO 앤서니 노토
“은행하지 마세요, 소파이 하세요.“(Don’t bank, SoFi.)
2016년 2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에선 거대 은행 중심의 금융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광고 방영시간 30초당 500만달러(약 56억원)가 들어 대기업의 잔치로 여겨지던 슈퍼볼 광고에서 ‘안티 뱅크’의 메시지를 던진 것은 개인간(P2P) 학자금 대출 금융업체인 소파이였다. 당시 창업한 지 4년을 갓 넘긴 소파이는 슈퍼볼에 등장한 가장 어린 기업으로 기록됐다. 광고를 기획한 조앤 브래드포드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미국 광고전문지 애드 에이지(AdAge)와의 인터뷰에서 “은행이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우리는 넷플릭스”라며 기존 은행의 대안이 될 것임을 자신했다.
이후 소파이의 기업 가치는 44억달러(약 5조원)까지 성장했다. 누적 대출금은 300억달러(약 33조원), 대출 이용객은 50만명을 넘어섰다. 컨설팅 회사 KPMG가 선정한 ‘2017년 핀테크 100대 기업’에선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가 발표하는 유망 스타트업(신생혁신기업)인 ‘디스럽터 50’에도 2015년 이후 4년 연속 선정되며 에어비앤비, 우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학자금 대출시장 진출한 동문의 힘
소파이의 창업자인 마이크 캐그니(46) 전 최고경영자(CEO)는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 규모에 이르는 학자금 대출 시장에 주목했다. 정부나 기존 금융기관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지만 대출 과정이 까다로운데다 대출 금리도 상대적으로 높아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웰스파고 은행을 거쳐 헤지펀드 회사를 창업하기도 한 정통 금융인 캐그니는 기존 금융시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했다. 그는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중 동문 세 명과 함께 스탠포드대를 졸업한 선배들이 재학생 후배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P2P 사업 아이디어로 소파이를 창업했다. 명문대로 꼽히는 스탠포드대 졸업장과 이후 취업하게 될 직장이 ‘돈을 갚을 능력’을 보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회사 이름도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에서 따 왔다.
2011년 진행된 첫 대출은 스탠포드대 동문 40명이 1인당 5만달러씩 십시일반으로 모은 200만달러를 재원으로 삼았다. 이 돈으로 스탠포드대 경영대학원 재학생 100명이 혜택을 받았다. 2012년에는 하버드대와 노스웨스턴대, 펜실베니아주립대, 메사추세츠공대(MIT) 등 40여개 대학으로 사업을 넓혔다. 당시 연방 정부의 학자금 대출 금리가 7.9% 수준이었지만 소파이 대출 금리는 이보다 낮은 5.99%대로 정해졌다. 한도는 1인당 최대 20만달러까지였다.
소파이는 동문의 힘을 십분 활용했다. 졸업생은 학비를 지원한 재학생이나 퇴직자가 구직 활동을 할 때 취업을 알선하는 등의 멘토 역할을 충실히 했다. 동문들은 기금을 활용해 재학생의 학비를 지원하면서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는 평판을 얻었다.
◇P2P 대출로 출발, 은행업에 도전하다
2014년 소파이는 학자금 대출 일변도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 해 4월 페이팔의 공동창업자인 피터 틸 등으로부터 8,000만달러를 투자받고 10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5년에는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한 개인신용대출도 도입했다.
기존 학자금 대출자들이 취업을 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딸 경우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거나 상환 기간을 조정할 수 있는 상품도 만들었다. 대형 병원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의사들에게는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상환 일정을 미룰 수 있는 거치식 상품을,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는 졸업생을 위해서는 대환 상품을 만들었다. 지난 2016년부터는 기업과 제휴한 ‘소파이 앳 워크‘(SoFi at work)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아직 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을 조금 더 낮은 금리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제도다.
나아가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인 은행업 진출에 나섰다. 2월에는 모바일 뱅킹 스타트업인 젠방크스(Zenbanx)를 인수하고 6월에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은행업 등록을 위한 예금보험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서에는 예금과 직불카드, 나중에는 신용카드 서비스까지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일반 기업도 은행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유타주의 은행법을 활용하기 위해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자회사인 소파이 뱅크(SoFi Bank) 본사를 설립할 계획까지 세웠다.
◇데이터 분석으로 빛을 본 ‘관계 금융’
소파이가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동문이라는 연결고리를 이용한 ‘관계 금융’으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해 축적한 데이터는 치밀한 분석 기술과 만나 대출 이자율을 시장 금리보다 낮췄고 대출 절차도 더 간단하게 바꿨다. 캐그니는 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북미 최대 스타트업 컨퍼런스인 ‘테크 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에 연사로 나서 “우리는 금융 회사가 아니라 관계 회사”라며 “전통적인 금융 기관은 이 방식에 대해 저항하겠지만 10~15년 후 모든 금융기관은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파이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현재 변동금리 기준 연 2.48~6.99%, 고정금리 기준 3.899~7.804%의 이율이 적용된다. 정부가 보증하는 스탠포드론 이자율은 4.45~6.8% 수준이지만 민간 대출 이율은 그보다 더 높다. 소파이는 2015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만3,258명의 대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만기 상환을 할 때까지 누적하면 약 17억5,600만달러(1인당 약 1만7,000달러)의 이자 절감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직장을 잃을 경우에는 한 번에 3개월까지 최대 12개월간 상환을 중단할 수 있는 ‘실업 보호’ 제도도 만들었다. 소파이는 또 대출자가 직업을 잃었다는 것을 증명하면 다시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대출도 쉬웠다. 홈페이지에서 신용등급을 평가한 뒤 대출 기간, 대출 금액을 설정하면 매달 얼마나 갚아야 할지, 이자는 얼마나 절약할 수 있을지를 보여줬다. 모든 대출 작업은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구원투수’ 안토니 노토에게 거는 기대
소파이는 올해 초 ‘트위터의 2인자’라고 불리던 안토니 노토(50)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새 CEO로 영입했다. 창업자였던 캐그니가 직장 내 성 문제로 물러나면서다. 노토가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트위터의 주가가 하루만에 3.9%나 하락할 정도였다.
캐그니의 낙마는 거침없던 소파이의 확장세에 제동을 걸었다. 소파이의 은행업 인가 획득은 경영진 교체기를 맞아 주춤한 상태다. 지난해 투자 받은 5억달러를 재원으로 해외 진출도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중단됐다. 새로 부임한 노토 CEO는 회사 내부를 추스르는 것은 물론 P2P 기업인 소파이를 새로운 개념의 은행으로 안착시키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았다.
우선 지난 6월 대안 금융 서비스인 ‘소파이 머니‘(SoFi Money)를 시범 출시했다. 소파이 머니는 기존 은행과 마찬가지로 돈을 저금해놓고 일정 수준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금융 서비스다. 직불카드를 발급받아 매장에서 결제를 하고 자동화기기(ATM)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내 다른 은행과는 달리 계좌 유지 수수료도 들지 않아 기존 은행을 위협하는 ‘파괴자’라는 별칭도 얻었다. 노토 CEO는 취임 직후 가진 아메리칸뱅커와의 인터뷰에서 “조달 비용과 신규 고객 유치 비용을 낮추고 고객의 생애 가치를 높이는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획득도 다시 진행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노토 CEO가 마주한 또 다른 과제는 기업공개다. 소파이는 창업 3년만인 2014년부터 상장 유망기업으로 거론됐지만 그 동안 소프트뱅크, 실버레이크 등 대형 투자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며 기업 공개를 미뤄왔다. 온라인 대출 서비스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로부터 ‘AAA’ 신용 등급도 받았다. 그러나 미국 내 최대 P2P 금융기업으로 손꼽힌 렌딩클럽이 기업공개 직후 25달러까지 올랐던 주가가 최근 3달러대로 폭락할 정도로 업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노토 CEO는 취임 직후인 지난 2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 회사의 성장은 믿을 수 없도록 강했고 수요도 매우 긍정적인 환경이었다”며 “우리도 어느 시점엔 기업 공개를 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과 힘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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